-0-
죽고 싶다.
그건 내 오랜 열망이자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하나의 욕망이었다. 언제쯤부터 이 욕구가 내재했을까. 나에게 삶이란 것은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쯤부터 매일 아침 개운치 못한 몸을 겨우 일으켜 집 밖에 나가는 일을 내겐 크나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바람은 차가웠다. 그 뜨겁던 여름은 언제 사라진건지, 원… 출근 준비를 마친 나는 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내 자취방 앞에는 고등학교가 하나 위치해있다. 7시 40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친구들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교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교복을 마지막으로 입어본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은 지금 나의 교복은 양복이었다.
‘크게 다를건 없네. 자켓에 촌스러운 줄무늬가 없다는거 정도만 빼면.’
학생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재미없다.’
무료한 권태감의 재인식은 언제나 있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독 오늘만큼은 이 권태감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나는 남은 담배를 마저 피우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회사에는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댔다. 걱정스런 말투로 무슨 일인지 묻는 팀장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당일 결근 통보한 적이 한 번도 없었구나. 그때, 어떤 학생들의 대화소리가 내 귀에 스쳤다.
“수시에서 납치당하고 싶다.“
나는 왠지 모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실종됐어요.“
-1-
평일 오전의 기차역은 한산했다. 역전 식당에서 대충 끼니를 떼우며 오늘 아침에 있던 일을 곱씹어보았다. 내가 대체 왜 그랬지?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것도 아주 파렴치한인 거짓말을. 팀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 걱정했다. 자기가 알아서 휴가 처리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팀장에 대한 죄책감, 어머니에게 미안한 감정보단 알 수 없는 흥분감이 날 휘감았다. 마치 고등학생이 꾀병을 부려 학교를 가지 않은 느낌. 정말 교복이 양복으로 바뀌었을뿐, 변한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땐 참 재미있었지. 그 때의 난 어땠더라? 애들이랑 다같이 계곡도 갔었고, 그때 처음으로 술도 마셔보고… 시험 끝나면 맨날 다같이 놀러가고… 수능만 보고 달렸었고…
아니, 이런거 말고. 나는 어땠지?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더라? 기억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갈 수록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해졌다.
자리에 앉아서도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의 메모장을 켜서 고등학교 시절의 나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 친구들이랑 잘 어울렸음
• 공부는 곧잘 했음 특히 수학
• 감투 쓰는걸 좋아했음
• 영화를 좋아했음
• 책 읽는걸 좋아했음
생각보다 기억나는게 많이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적어보려 했지만 더 이상 생각나는건 없었다. 일기를 좀 써둘걸, 후회가 됐다. 그러다 문득 대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적었던 것이 기억났다. 혹시 아직 남아있을까 싶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예전 백업 자료를 뒤져보았다.
1. 자신의 성장 과정과 이러한 환경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술하시오.(1000자)
어린 시절부터 꿈을 찾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보라고 하시던 부모님 손에 자라왔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중요시 여기는 부모님 덕분에 많은 분야에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 저는 인간, 나아가 생명체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저는 S 대학교 의예과에 진학해 장차 내과 전문의가 되고 싶습니다.
이런, 첫 줄부터 거짓말이라니. 대충 예상은 했다만 생각보다 뻔뻔하게 첫 줄을 적었었다. 스스로 나름대로 진실된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내 거짓말의 역사는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얼굴도 잘 못 보고 살았다. 게다가 뭐든 좋으니 해보라기보단 우리처럼 의대 가라고 하시던 분들 아니시던가.
결론적으로 난 의대에 진학하지 못했었다. 면접 때 면접관이 그런 질문을 했었다.
‘학생부에 보니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었나요?‘
예상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 답변이 아닌 답변을 하고 있었다.
‘그 책, 참 재미없었어요.‘
이 뒤로 뭔갈 더 말했던거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에 홀린 것마냥 그 책에 대한 내 진짜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당연히 면접관들은 당황했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하지만 그게 딱히 아쉽진 않았다. 의사 부모님을 보고 자란 탓일까, 내 눈에 의사는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생명에 호기심도 딱히 없었다. 뇌에 대한 흥미는 꽤나 있었지만, 심리학적인 측면의 관심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자기소개서를 ‘자소설’이라고 부르는게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고 있다고 인지하지 않는다. 나는 의자에 정지해있다. 하지만 시끄러운 철길 소리와 가끔씩의 덜컹거림은 내게 넌 멈춰있지 않다고 알려준다. 나는 그 소리와 몸의 흔들림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차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계속해서 나아갔다.
계속해서 나아간다.
기차에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여행은 내게 익숙했다. 이럴땐 내가 지금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된다.
나는 모교로 향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