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과의 비교를 끊을 수 없었다. 남들과 비교를 하면 괴로워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중독처럼 이를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의 글을 쓰기 전, 스스로를 곱씹어본 결과 무언가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혹시나 나처럼 비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은 모든 것을 남들과 비교하는가?
가령,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노래를 못 부른다고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가 남들에 비해 바느질을 못 한다고 스스로를 저울에 올려놓지 않는다. 예시는 다를 수 있어도, 분명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답은 굉장히 간단하다. 나는 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바느질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적어도 나는) 스스로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들만 남들과 비교를 한다. 이러한 비교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열등감이라고 부른다.
앞선 예시를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 보자. 반대로, 축구 선수가 남들에 비해 미적분학을 못한다고 열등감을 느낄까?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러진 않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천차만별이다. 학생에겐 공부가, 축구 선수에겐 축구가, 또 누군가에겐 바느질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일 것이다. 즉, 내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2.8%로 집계되었다. 여기서 취업자 약 2만명, 입대자 약 2400명을 제외하고 남은 약 9만명(20.9%)는 N수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단순 합산으로 대략 93.7%의 사람들이 대학에 갔거나, 대학에 진학할 의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내 또래들의 비교 대상은 주로 학업, 특히 성적에 관련되어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지 말고 놀아도 된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로 잠시 돌아가보자. 수많은 과목을 배웠겠지만, 결국 수능에서 치르는 과목은 국어/수학/영어/탐구 과목들이다. 필자가 이공계 출신이므로, 이공 계열 기준으로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요즘의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학과는 역시 의예과이다. 학원 강사로 일하며 입시 상담을 수십 차례 했지만, 중위권~최상위권까지 넓은 폭의 학생들, 또는 학부모들은 다들 의예과를 목표로 삼는다. 다른 학과라면 쳐다도 안 볼 대학도 의예과의 입결은 서울대 공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참으로 재밌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과목도, 학생들의 이상향도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하대하던 분야들이다. 문학 분야는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조선시대 양반들은 한글을 '아녀자들이나 사용하는 글자'라며 사용하지 않았다. 수학/영어/과학은 모두 양반이 아닌 중인들의 담당 분야였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 상위 1-2%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참 별 것도 아닌 일들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시대가 변했고, 그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 시대의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고. 나도 동의한다. 21세기의 의사는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훌륭한 직업임을 부정할 수 없다. 21세기의 수학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다. 다만, 이 글의 제목을 다시 한번 보자.
우린 이런 가치들을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평가하곤 한다. 나는 왜 쟤보다 공부를 못 하지, 나는 왜 수학을 남들만큼 못 하지, 나는 왜 의대를 못 가지 등. 나는 이런 비교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게 학업에만 국한된 일일까?
대학을 졸업할 때 쯔음에는 그 이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대학원을 갈까? 취업을 할까? 취업을 할 수는 있을까? 어디에 취업하지? 등등. 그럼 또 비교를 한다. 누구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더라, 누구는 벌써 석사를 받아서 미국에 유학을 갔다더라, 누구는...
그럼 취직하고 나면? 누구는 성과를 얼마나 냈다더라, 누구는 연봉이 얼마라더라, 누구는 벌써 승진했다더라, 누구는 결혼했다더라, 누구는 서울에 집이 있다더라, 누구는 애가 공부를 잘한다더라...
그놈의 누구. 심지어 다 다른 사람이다. 몽땅 뭉뚱그려서 누구라고 지칭할 뿐. 비교할 수 있는 여지는 끊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비교하다 보면 그 생각의 끝은 나는 평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비교를 멈춰야 한다. 인생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 없다.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것은 남들보다 나은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온전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이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여야 한다.
부끄럽게도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나조차 아직 완전히 버릇을 고치지는 못 했다. 남의 시선에 갇혀 산다는 말은 곧 남들과의 비교 우위를 갖고자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게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동기부여를 열등감에서 얻는 것은 마치 춥다고 옷을 태워 불을 피우는 것과 같다.
남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상 비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걸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언젠가의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교가 열등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다만 내가 분명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내가 지금 집착하는 것들은 절대적인 가치들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