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는 6·25 전쟁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분단국가가 되었고, 21세기인 지금도 남북관계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논해진다. 그렇기에 문학사에서도 6·25 전쟁은 중요한 소재로 다뤄졌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는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개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의 풍경’을 소설 속에 나타난 문장들과 당시의 시대 상황,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여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 6·25 전쟁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병신’, ‘형’
소설은 주인공 ‘나’가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형에 대한 묘사 및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형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인물로, 현재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과거 술에 취해 동생인 ‘나’에게 전쟁 당시 같이 낙오되었던 동료를 살해하고 도망친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일에 대한 언급을 피한다. 소설 내에서 형은 의료사고로 자신의 환자였던 소녀가 사망하자, 충격을 받은 듯 휴원하고 집에서 소설을 쓰며 지낸다. 의사로 일하며 그 누구도 죽게 만들지 않은 그는 한 번의 의료사고로 인해 잠깐 일상생활을 멈춘다. 그에게 잊고 싶은 기억이었던, 전쟁 속에서 마주한 죽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속죄, 혹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형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형이 쓰는 소설은 형이 목격한 최초의 죽음인 노루 사냥으로 시작되어 두 번째로 목격한 동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는 어린 시절 멋모르고 따라갔던 노루 사냥에 대해 가슴이 두근대고 끝없는 후회가 피어올랐다고 진술하고 있다. 설원에 뿌려진 노루의 핏자국을 보며 마음을 졸인 그는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6·25 전쟁에 참여한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시민이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타인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참전 용사라 불렀고, 그들의 행위를 조국을 수호하기 위함이었다고 정당화해주었다. 이는 1961년 군사정권 수립, 1965년부터 시작된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과 무관하지 않다. 군사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1960년대의 시대 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군인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웅이라 칭하는 그 사람들은 전쟁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까? 형은 의무병으로 복무하며 군인들을 ‘살리는 것’에 집중했던 인물이지만, 김 일병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소설 속에서 확실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형은 김 일병의 죽음을 방관한 방관자로 보인다. 실제로 참전했던 모든 군인은 적군을 사살하였고, 자신의 옆에 있던 동료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전쟁 속에서 받은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고 참전자 이외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은 트라우마로 남아 형에게 죄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형은 그 아픔 속에서 이를 물고 살아왔다. 그는 그 아픔이 오는 곳을 알고 있는 것이다.’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은 상처를 품고 일상 속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회적 인식과 내면적 상처의 괴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은 기억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형은 전쟁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자신의 일상생활에 집중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인 것처럼 일에 몰두하는 형의 직업이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트라우마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 형은 기억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결국 한 소녀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금 괴롭고 잊고 싶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형은 자신의 아픈 기억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 하지만 그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는 것을 주저한다. 소설을 훔쳐보던 ‘나’는 형이 김 일병을 쏜 것으로 결말을 적지만, 형은 그런 ‘나’를 ‘머저리 병신’이라며 비난하고 형이 오관모를 쏜 것으로 결말을 바꾼다. 하지만 실제로 오관모는 살아있었고, 그를 만난 형은 집으로 돌아와 소설을 모두 불태운다. 즉, 형은 김 일병의 죽음을 방관한 과거의 사건을 반성하며 아픈 기억을 잊고자 상상한 내용으로 소설의 결말을 맺었다. 형이 ‘나’에게 ‘머저리 병신’이라며 욕하는 것은 죽음을 방관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했던 현실의 자신에게 한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전쟁 속에서 동료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죄책감을 얻었고, 이는 그에게 내면의 상처가 되었다. 그는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다.
결론적으로 형은 6·25 전쟁 이후 상처 속에서 살아갔던 참전군인들의 아픔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전쟁 중 죽음을 막지 못한 가해자이자 그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가 만든 피해자이다. 오관모는 그에게 ‘전쟁의 상처’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형은 소설 속에서 그를 죽임으로써 상처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지만, 현실에서 그를 마주한다. 이는 그가 전쟁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소설 속에서 ‘나’는 형이 상처를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형은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자신의 환부를 마주할 용기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상처의 완전한 치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청준의 또 다른 소설 ‘소문의 벽’에서 주인공 박준은 어린 시절 겪은 전쟁에서 기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갇힌다. 즉,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오랜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인 것이다.
2. 나약한 ‘머저리’, 나
작중에서 ‘나’는 사랑하던 혜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혜인과 헤어지고 나서 문득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형의 소설을 훔쳐본 이후 소설이 완성될 때까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나’는 형과 완전히 대비되는 인물이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만, 환부를 모르기에 환부를 마주하려는 노력, 상처를 치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의 무기력함은 소설 속에서 연애 관계에서의 적극성 차이로도 드러난다. 형은 아주머니와 결혼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나’는 떠나겠다는 혜인을 붙잡지 않는 것에서 두 사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을 읽은 ‘나’는 형의 상처에 관심을 두지 않고, 형이 사람을 죽였다는 행위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그렇기에 그는 형의 소설을 제멋대로 완성한다. 오관모가 오기 전 김 일병을 미리 살해한 것으로 결말을 짓지만, 이 결말을 읽은 형에게 큰 비난을 받는다. 형이 적은 결말을 읽고 형이 술에 취해 오관모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제야 ‘나’는 형의 고통을 느낀다. 이렇듯 ‘나’는 전쟁 속에서 형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나’가 소설에서 김 일병을 살해한 것은 전쟁 속에서 형이 김 일병에게 느꼈던 연민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더욱 강조한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지닌 상처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우리는 전쟁이 참혹하고 괴로운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전쟁 속에서 겪을 인간성에 대한 혼란에 대해서는 잘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작중 형은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상처를 자신도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형은 자기 멋대로 소설의 결말을 지은 ‘나’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는데, 이는 자신의 상처가 이해되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다시 재확인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아픔은 환부를 특정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 필자는 ‘나’의 아픔의 시작이 그의 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형의 이야기를 듣고 ‘화폭이 고통스러운 넓이로 변했다’라고 말하고, 소설 내내 형의 성격이 유약하고 겁이 많다고 생각한다. ‘형은 언젠가 자기가 동료를 죽였다고 말했지만, 형의 약한 신경은 관모의 행위에 대한 방관을 자기의 살인 행위로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형의 살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전쟁의 상처는 참전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변인들은 다른 종류의 상처를 얻는다. 참전자의 주변인들은 ‘나의 지인이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할 것이고, 이는 선과 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설 속에서 내가 아벨과 카인, 선과 악 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형이 김 일병을 죽이려던 오관모를 말리지 않은 까닭은, 김 일병과 함께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형의 살인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지만, 당시의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사건은 그 속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큰 상처를 남긴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참전자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참전자들 스스로 그러한 칭호에 대해 아이러니를 느끼지만, 전쟁에 휩싸이지 않았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 속 ‘나’가 무기력한 인물인 까닭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환부를 찾지 못하고, ‘나’의 아픔에는 형과 달리 명료한 얼굴이 없는 것이다.
또한, 4·19 혁명을 통해 쟁취한 민주주의를 5·16 군사정변을 통해 다시 빼앗긴 역사적 사건은 소설 속 ‘나’가 무기력함을 나타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주체성을 올바르게 가진 적이 없었던 1960년대의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앞선 세대들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내면의 상처들, 그리고 1960년대 중반까지의 여러 사건들을 몸소 겪으며 사람들이 느꼈을 상실감과 무력감을 우리는 ‘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결론
이청준의 눈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1960년대는 ‘상처’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신과 머저리’에 등장하는 ‘나’와 형은 둘 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입었다. 형은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했기에 그 상처를 얻었고, ‘나’는 형이 전쟁에 참여했기에 형과는 다른 종류의 상처를 얻었다. 형의 상처는 형이 방관한 동료의 죽음에서 기인하였고, 이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정신적인 상처를 지닌 ‘병신’이다. ‘나’는 상처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끝까지 자신의 환부를 찾아내지 못할 것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소설 속에서 스스로의 환부도 모르고, 무기력하고 능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머저리’이다.
소설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드러내는 외화와 형의 생각을 드러내는 내화를 통해 전쟁 이후 피폐하게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적인 배경을 참고하여 상상을 해본다면,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일로 말미암아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은 당시의 청년들을 대변하는 인물로 파악할 수 있다. 소설 속 형은 전쟁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 적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작중에서 상처의 원인이 될 만한 행동을 선택하여 행한 적이 없다. 하지만 형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내린 선택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그렇기에 형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상처를 치유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그 무엇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1960년대의 청년들은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으나 독재를 경험했다. 소설 속의 ‘나’는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환자로 여긴다. 우리는 무기력함을 둘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떨까? 우리는… 자신의 환부를 명확히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