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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erry Jan 10. 2024

잠들기전 나에게

악필좀 고치자.


 모든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 마무리로 일기까지 쓰고 나면 꼭 알 수 없는 글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럴 때면 몽롱한 상태로 팬을 붙잡고 노트에 무지성으로 갈기듯 내려 적어간다. 그 와중에 지식의 모자람을 느끼고 책이나 검색을 통해 몇 문단들을 빌려와 필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 분 안 돼서 적어 내린 후 곧바로 침대에 뻗는다. 원래 글을 써놓고 한 번은 검수하는데 이때는 피곤이 앞서기에 그럴 겨를 없이 냅다 코부터 골아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에 일어나 비몽사몽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두 눈을 비비며 어제적은 글들을 바라본다. 그리곤 생각한다.


"... 뭐라는 거야?"


 세상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어젯밤 잠들기 전 나를 만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따지고 묻고 싶다. 안 그래도 악필 중 악필인지라 간혹 내가 써놓고도 내가 바로 보지 못하거늘, 그야말로 노트 위에 뭉개진 잉크 자국들에게서 맥락 찾기란 참 쉽지 않다. 어디 나만의 글씨를 해독해 줄 프로그램은 없는 건가.


 그래도 그렇게 상형문자 같은 나의 글씨들을 하나하나 해독하고 있노라면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가 듬성듬성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면 확실히 제정신일 때보단 정신없을 때 적는 글들이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거 같다. 왜 가끔 글 쓰는 작가들은 깨어있을 때 보다 잠들 때나 잠들기 전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참을 노트에 적힌 글들을 다시 요약하고 컴퓨터에 워드로 옮겨놓고 나면 제법 시간이 흘러가 있다.

우선 샤워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요약된 내용들을 가지고 이것저것 생각들을 덧대기 해본다. 쓰고 고치고 다시 지우고를 여러 번, 그럼에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을 바라보면서 이번엔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본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다. 확실히 눈으로만 하는 리딩보단 입으로 하는 리딩이 꽤 안정적으로 느껴지도 한다. 그렇게 삼매경에 빠져서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이고 저녁이다. 정신 차리고 보면 하루가 다 가고 없다. 


 이렇게 보면 전날에 적은 나의 글들은 다음날 나에게 주어지는 숙제와도 같다.

"이 문제를 줄 테니까 내일 한번 풀어봐" 혹은 "지금의 나로선 모르겠으니까 내일 네가 한 번 해봐"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이전에 우선 악필부터 어떻게 고쳐봐야 하는 게 수순이 아닐까 싶다. [도저히 읽혀야 뭘 하지...]

.

.

.

.

.


 요 며칠 글감이 없어서 무지성으로 생각나는 대로 글들을 적었다. 

하지만 그렇게  적고 나니 그것 또한 글감이었다고 깨닫게 되었다. 뭐든 항상 잘하라는 법 없고 잘 쓰라는 법도 없다. 그저 어느 순간 잘하고 싶단 욕심에 눈이 멀어 제 갈 길에서 잠깐 길을 헤맨 것뿐이리라.


 그저 별 특징 없는 나무와 같은 무뚝뚝한 글이면 어떤가, 초원 위 잡초처럼 의미 없어 보이는 글이면 어떤가. 결국 한대 모아보면 커다란 숲이 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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