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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erry Nov 17. 2023

뽀통령의 지혜

괜히 뽀통령이 아니더라.

여보~ 오늘 월급 나오는 날이죠? 그러면 나 사고 싶은 것 좀 사도 돼요?"


이제 막 다섯 살 된 여자아이 입에서 제법 생생한 어투에 질문이 나오자 왠지 모르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라는 말을 건네려는 찰나에 아이는 어느새 내 왼쪽 팔에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앙탈을 부린다.



“아잉~ 여보~ 나 얼마 전에 나온 신상 가방 사고 싶어요~”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평소에 듣던 거래처 멘트를 빌리기로 했다.


“아... 오늘은 주말이라 회사에서 돈을 못 준대~ 다음 주 월요일에 월급이 들어와요~ 하하~”


나의 어색한 대답에 아이는 일순 표정이 굳더니 실망한 듯 나를 올려다본다.


“뭐야... 삼촌! 그렇게 하면 안 돼!”


“응?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아... 으... 아무튼! 아우! 그게 아니라니까!”


아이는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려다 잘 되질 않았는지 분에 차 고사리손을 움켜쥐며 내 어깨와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아! 아! 알았어 알았어. 그럼 소현이가 원하는 게 뭐야?”



나의 질문에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질려버렸다는 듯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리곤 거실에 있는 소파로 뛰어가 앉고선 리모컨을 만진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정말이지 애들 마음은 모르겠다.’


 




깜깜한 방 한가운데


책상에 놓인 핸드폰이 빛을 내며 전화벨이 울린다.



“뭐야... 이 시간에...”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울리고 있는 핸드폰 액정에는 친구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위로 조그맣게 표시된 시간은 새벽 3시 즈음을 알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 자냐?”



“이씨... 지금이 몇 신대... 그 질문이 맞을까?”



“그래? 미안하다야. 다른 게 아니고 오늘 하루만 우리 애 좀 봐주면 안 될까?”

 


다짜고짜 자신의 용무만을 내뱉는 친구의 행태에 정말이지 화가 났지만, 잠결에서 인지 도무지 화낼 기력이 나질 않았다



“갑자기? 왜?”



“다른 건 아니고, 급하게 오늘 부산 좀 내려가야 해서”

 


“부산? 왜?”



“처가 댁에 큰 이모부님이 돌아가셨데. 그래서 그분 장례식장에 갔다 와야 하거든.”



“... 그래? 그럼 소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면 되지 않아?”



“오늘 일요일이잖아. 유치원도 다 휴원하고. 그러니 너 가 좀 봐줬으면 하는 거지”



황금 같은 주말에 갑자기 없던 일정이 생기는 게 귀찮아서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어?”



그 질문에 친구는 일 이 초간 말이 없었다.



“... 물어봤지.”



안 물어봤구만.



“아무튼, 부탁 좀 하면 안 되겠냐?”



친구의 부탁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어, 대신에 일찍 와야 한다. 나도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니까.”



“정말? 고맙다! 그럼 아침에 우리 집으로 와. 기다리고 있을게.”


“알았어.”



전화를 끊고 책상 위에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곤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내 황금 일요일.’


 


 


 소파에 앉은 아이는 리모컨을 만지며 이리저리 TV 채널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옆으로 나는 한참을 소꿉놀이에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장난감이 제법 많았기에 꽤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어른 몸뚱이만 한 커다란 박스에 모든 장난감을 담아내니 무게가 상당하다. 저도 모르게 ‘끙차’라는 기합과 함께 박스를 들어 올리곤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의 방은 마치 생일 축하용 폭죽의 잔해가 바닥에 뿌려진 것 마냥 온 바닥에 장난감들이 널 부려져 있었다. 상자를 놓을 위치까지 가기에는 발에 치이는 것들이 많았기에 면적을 줄이고자 까치발을 들고 장난감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들어섰다. 그러다 엄지발가락 부근으로 엄청난 고통이 치밀어 올라오면서 “악!” 소리와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박스를 놓을 위치에 던지듯 내팽개치고 주저앉아 발가락을 부여잡았다. 극심한 고통에 눈물이 찔끔 나면서 곧 발가락 주변을 살피니 미미 인형의 발이 보였다. 인형의 발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그렇다. 그 크기가 족히 수십 배 차이가 나는 내 발가락이 저 작디작은 하찮은 미미 인형 발에 지고 만 것이다. 조금 더 위로 시선을 살피니 미미 인형의 웃는 얼굴이 보였고, 그 웃는 얼굴은 ‘처키’ 인형의 웃는 얼굴보다 더 사악해 보였다.



 그렇게 어질러진 방마저 치우고 나서 거실로 나왔다.

거실 소파에는 아이는 어느새 편안한 자세로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따라 앉아서 같이 TV를 보았다. TV에선 ‘뽀로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우리의 뽀통령님은 TV 안에서 친구들과 연신 웃고 떠들면서 TV 액정 너머 아이에게 그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아이는 가끔씩 뽀로로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도 추고 심지어 온 바닥을 때구루루 구르며 웃기도 했다. 그 모습에 왜 뽀로로가 ‘뽀통령’이란 지칭을 가지게 된 건지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서 아이에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뽀로로에 꽂혀서는 눈을 TV에 고정한 체 “삼촌! 이것만 보고!”라며 내 질문을 끊어 버렸다. 뽀로로가 그리 좋을까... 나는 그런 아이에게 "정말 이것만 보고 밥 먹자"라고 말한 뒤 무심히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TV에서 “하늘을 날고 싶어요!”라며 말이 들려왔고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서 TV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새에 관한 책을 보던 뽀로로는 자신 역시 같은 ‘새’이기에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란 부푼 꿈을 꾼다. 그리곤 주변 친구들의 도움과 함께 하늘을 날기 위한 도전을 하지만, 뽀로로는 다른 새와는 달리 하늘을 날 수 없는 날개를 가졌기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 ‘포비’라는 곰 친구가 뽀로로의 고민을 듣곤, 바다가 보인 벼랑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여기라면 뽀로로 네가 날 수 있을 거야.”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뽀로로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포비'의 말을 믿고 이내 힘차게 벼랑 끝으로 달려가 하늘이 아닌 바다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바닷속에서 뽀로로는 이내 하늘을 나는 새보다 더 자유롭고 멋지게 날아다닌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같은 새라고 모든 새가 푸르른 하늘을 날지 않는다. 뽀로로처럼 하늘같이 푸르른 바닷속을 나는 새들도 있다. 이렇듯 자신의 재능을 남들과 비교해서 바라보지 말고,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을 찾아서 나아가길 바라는 제작진들의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이를 바라봤다.

이 아이도 나중에 커서 언젠간 자신만의 꿈을 찾아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현이는 꿈이 뭐야?”



아이는 TV에서 눈을 떼고 나를 올려다봤다.



“음... 과학자!”



“그래?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어?”



“그냥 과학자!"

 


“그렇구나, 그럼 소현이는 과학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어?”



“음... 아니...?”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에 몸을 비꼬면서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과학자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 식물 과학자, 동물 과학자, 지구 과학자, 우주 과학자 심지어, 사람을 연구하는 사람 과학자도 있어.”



“와~ 많다!”



“소현이가 나중에 커서 어떤 과학자가 되려는데 만약 고르기 힘들면 이것저것 한 번씩 다 해봐. 식물 과학자도 해보고~ 동물 과학자도 해보고~ 지구 과학자도 해보고~ 말이지.”


 

“그래도 나는 한 가지만 하고 싶은데.”



“물론, 마음에 드는 과학자 하나만 해도 돼. 헌데, 소현이가 어떤 과학자가 되다가 만약 그 과학자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과학자를 찾아서 해도 괜찮아. 아마 소현이는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으니까 어떤 과학자를 해도 잘할 거야.”



“와! 그럼 나는 우주 과학자도 해보고 싶고! 동물 과학자도 할 거야! 그, 그, 엄마 아빠 과학자도 할 거야!"



뜬금없이 처음 듣는 과학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엄마 아빠 과학자는 무슨 과학자야?”



“엄마하고 아빠가! 어, 음... 아 그러니까! 왜 돈 가지고 싸우고 웃는지 그런 거 하고 어! 음...! 아 몰라!”



이번에도 아까와 같이 자신의 논리 표현의 한계에 부닥친 아이는 또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 어쨌든 밥 먹자~ 뭐 먹을까?”



내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아이도 같이 일어나 내 허벅지에 찰싹 붙어서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치킨!”







우리는 아이를 바라봄에 있어서 그 아이가 가진 재능을 바로 보기에 과연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 아이가 자신만의 재능을 펼치려 할 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우리는 평소에 어떤 말들을 건네고 있을까?


 

PS. 소현이란 이름은 가명입니다.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뽀로로 1기] #07 하늘을 날고 싶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_it1iShFb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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