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여유를 두면 좋으련만.
내가 사는 빌라 뒤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이겨온 나무인 만큼 그 높이도 크기도 제법 늠름하다. 늘 베란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나무는 속절없이 흐르는 나의 세월 속에 지금 계절이 어느 위치인지 몸소 옷을 갈아입으며 알려주던 고마운 친구다.
하지만 요 며칠 이상하리치 싶은 급작스러운 추위에서 인지, 나무는 샛노란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노란 끼가 섞인 푸르뎅뎅한 잎만을 바닥에 떨구곤 그새 앙상한 빈 가지만을 내놓고 있었다. 꾸릿꾸릿한 은행나무 열매도 잎과 같이 주변으로 한가득 널브러져 있어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그 열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8년을 이 집에서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다. 혹여 나무가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런 나무의 모습에 혹시 이 동네에 있는 다른 은행나무들도 그럴까 싶어 대충 후드티만 걸쳐 입고는 밖으로 나섰다. 집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동네 공원이 있다. 그 공원에는 우리 집 나무와 같은 큰 은행나무 세네 그루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 그쪽으로 발걸음 재촉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나무들 역시 우리 집 나무처럼 온 바닥에 초록 섞인 노란 잎을 흩뿌려 놓곤 앙상한 가지만을 내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들이 겨울을 맞이하려는 리듬과 지금 찾아오고 있는 겨울의 리듬이 엇갈려 불협화음으로 인해 생긴 현상이리라. 올겨울은 유난히 더 빠르게 찾아올 거라고 하다만,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다. 모든 건 다 순서가 있거늘, 뭐가 그리도 급한지 이번 겨울의 바삐 한 발걸음 탓에 노랗게 익어야 할 은행잎들이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를 쓸쓸히 뒹구는 중이다.
우리네 삶도 이처럼 급작스레 찾아오는 변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어떠한 결과를 내기도 전에 재촉하는 상사의 닦달, 어떠한 도전에 있어서 준비되지 못한 마음, 어떠한 인내에 있어서 성숙하지 못한 자세 등, 이것들 역시 각자의 리듬 속에서 딱딱 맞춰가며 시간 들여 재가치를 빛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새 엇박자 속 허우적댐에 결국 2% 부족한 결과물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고심한다.
그 모습이 지금의 바닥에 수놓아진 설익은 은행나무 잎 마냥 어찌도 닮았을까.
또 우리와 같은 심정의 저 나무도 얼마나 상심이 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