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리'를 추억하며
특별히 새롭지 않더라도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가현리'이라 불렸던 동네. 그곳은 내게 정겨운 동네로 남아있다.
고등학교를 시내로 다니기 전까지
'가현리'는 어릴 적 우리 집과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중학교를 잇는 통학로 역할을 하던 동네였다.
오전 7시 20분에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은 뒤, 오전 8시 하나언니가 나오는 KBS TV 유치원 하나 둘 셋 오프닝 곡이 나오면 집을 나와 '가현리'를 통해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난다.
우정이발관, 은하수오락실, 우주문구, 금정방앗간, 전파사, 중앙문구, 우리서점문구완구, 장터쇼핑, 둘리문방구, 장난감요새, 진주성, 용주네닭집, 종로떡방, 명문독서실 그리고 럭키슈퍼까지. 추억의 이름들.
'가현리'의 끝은 대학교 후문과 붙어 있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나 어릴 적에는 그곳에 논밭이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흙길에는 농작물 훼손을 막기 위해 굵은 철사를 꼬아 만든 울타리가 있었고 우물도 있었다.
평범한 동네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정겹고 소박한 맛이 있었다.
사람냄새 풀풀 풍기던 가게 주인들과 투박하지만 친절했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그곳에 많았다.
어린 시절 10년 가까이 그 길을 오가며 쌓인 소소한 추억들이 많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에 엄마와 아빠. 돌아가신 조부모님. 그리고 시집간 여동생과의 추억도.
'가현리'는 원도심 재개발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본래 그 자리에 동네가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철거됐고 그 자리에 대형건설사의 아파트가 멋들어지게 올라가 준공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21년 개봉한 황정민 주연의 영화 '인질'에서 그 동네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거 직전 영화의 카체이싱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 바로 '가현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괜스레 마음이 혼란해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애틋함일까?
세월은 많은 것들을 앗아가고 또 변화시킨다. 이제 그곳에 내가 기억하는 풍경은 없다.
갈아엎은 땅 위에 새 건물이 들어섰고, 곧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돼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다.
내 어린 날의 추억과 시간이 쓰인 그 동네와 사람들에게 미처 안녕을 고하지 못한 탓일까?
'조금 더 많이 가봤었다면, 사진이라도 남겨놨다면, 그곳에 살던 주민들과 대화라도 더 나눠봤다면.'
비록 사라진 동네와 사람들이지만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롭지 않도록 나 같은 사람들이 계속 기억해 주고 상기해야만 한다.
여기 이곳에 '가현리'가 있었다고.
그곳에 그들의 나와 많은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져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