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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May 13. 2023

사랑하는 병자(炳子)씨에게

안녕하세요.

한 일 년 만에 이렇게 안부를 전하네요.

잘 지내고 계신지 무척 궁금합니다. 


40년 전인 1985년. 전국에서 노동자 파업이 이어지던 그 해 여름에 저는 병자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의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 병자씨는 저를 만나고는 굉장히 기뻐했던 걸로 알아요. 


그로부터 오랜 날 동안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산책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냈어요.

이젠 먼 기억이지만 저를 대하던 병자씨의 모습이 따뜻하고 다정했었습니다.

조금 투박하긴 했지만요.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나눴습니다.


문득 병자씨와의 특별한 추억이 떠오르네요. 우리가 만난 지 20년 가까이 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

우리 같이 새벽에 일어나 산에 올랐던 거 기억하시나요? 운동 삼아서요.

산에 오를 때면 항상 한 손에 낡은 묵주를 들고 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기도를 하던 병자씨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 때 저는 그저 빠르게만 올라가려고 항상 병자씨를 앞질러 내달렸어요.

느리게 걸어오는 병자씨가 제대로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는 몇 번이고 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병자씨를 확인하고 또 다시 왔던 길을 갔습니다. 그 땐 무척이나 답답하고 힘이 들었는데, 이제와 함께 산에 오르던 그 때가 왜 이리 사무치게 그리운 지.


그 뒤로 20년 정도가 더 지나가면서 병자씨는 많이 쇠약해졌어요.

눈과 귀가 점차 멀어가고 거동이 불편해졌습니다. 기억도 가물가물해져서 저를 알아보지 못 할 때도 많았죠.

그리고 우리가 만난 지 40년이 채 되기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에 병자 씨는 저에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병자씨. 아니, 할머니.

떠나간 그 곳은 어떠신가요?  평화롭고 행복한 곳인가요? 꼭 그런 곳이길 손자가 바래봅니다.

그 곳에선 먼저 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만나 두 분이 좋아하시던 달래강변도 마음껏 걸으시고 

목계나루에 나가 민물매운탕도 드세요. 오늘따라 많이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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