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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May 01. 2024

내 집중력 내놔!

도둑맞은 집중력

"얘들아, 손 씻고 오자!"


올망졸망, 내 눈을 피해 복도로 나가는 순간! 복도에서 슬라이딩 선수, 멀리뛰기 선수, 달리기 선수, 소리꾼들이 복도에 가득하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한 아이는 뛰던 아이와 부딪혀서 엉엉 울고, 뛰던 아이는 눈치만 살살. 다른 반들이 급식실에 몰아치면 줄도 길어지고 순서가 뒤엉켜 큰일이다. 일단, 급한 두 아이들의 일을 후다닥 해결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실 앞에 줄을 섰다.

"휴우"


아이들을 줄 세워서 밥을 다 받아놓고, 화장실을 다녀오지 못해 손을 씻고 돌아왔다. 입구에서 만난 3학년 S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줄을 같이 섰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급식판을 드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장면.


데자뷰(Déjà vu)



나는 급하게 수저와 식판을 다시 내려놓았다. 뒤에 줄 서 있던 S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혼자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이미 내 자리엔 아까 아이들과 받아둔 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고, 두 번 받을 뻔했네."

"떤생님, 뭐라고요?"

늘 내게 관심이 많은 8살 꼬맹이들.

"아냐, 아냐 얼른 맛있게 먹자!"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는 것이 아니다.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교육청 메신저와 학교 내부 메신저에 읽지 않은 숫자가 날 기다린다.

'선생님, 교육청에서 전달 메시지입니다. 급한 공문이라 따로 연락 오셨어요.'

급하게 확인하고는 공문을 작성하여 올리려는데,

"선생님, 나랑 혜진이랑 보드 게임하고 있는데, 윤호가 카드 갖고 도망갔어요. 달라니까 때렸어요! 으앙..."

아이들이 몰려와서 있었던 상황을 한꺼번에 조잘조잘.

정신을 놓다가 시간이 초과되어 올리던 공문도 날아가 버렸다.

'이런!'


학교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띵똥!' 학부모 메시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희 엄마입니다. 급하게 체험학습을 가게 되었어요. 신청서와 보고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챙겨주어야지 생각했는데,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나 보다. 출력은 했는데 교무실에 나온 출력물을 가져오지 못해서 전달하는 것을 또 잊었다. 이 와중에 교실 프린터까지 말썽이다.

"선생님, 다희가 서류를 안 받아왔나 봐요. 어쩌죠?"

"죄송해요, 어머님! 제가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내일 다희 편으로 꼭 보내드릴게요!"


급하게 복도를 나가 준비물 보관실에 도착했다. 이런 정신머리. 내가 여기 왜 온 거지? 뭘 가지러 온 건가?

다시 돌아가다가 아이들을 만나 인사고 하고, 뛰는 아이들 단속도 하고.

교실에 가니, 떠오른다. 아까 출력해 둔 프린트물. 이런! 또 못 보낼 뻔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일하지 못하는 상황에 20년을 처해 있으니 나는 이미 산만하기 이를 데 없이 바뀌어 있다. 집에서도 책을 읽다가 내 눈에 들어온 +300개의 카톡 확인. 한 두 개의 방도 아닌데,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말도 섞지 못하면서 혼자 키득거린다. 음악을 틀며 책을 읽어야지 했다가 인터넷 서핑. '아, 맞다. 세제가 다 떨어졌지?' 쿠팡으로 들어가 주문하고 나니, 시간이 언제 이렇게 다 되었을까? 책을 읽겠다던 빛방울은 어디 갔지? 어디로 뿔뿔이 흩어져 방울방울 이것저것 하다가 날려버린 내 시간.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 글을 쓰다가도 몇 번을 책을 뒤적이다가, 스마트 폰 카톡을 확인하다가 친구랑 전화 통화까지. 글을 쳐다보면서 통화에도 집중 못하고 그렇다고 글을 써 내려가지도 못하고.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신간 도서가 도착했다며 교직원들에게 보내온 메시지에 한달음 달려갔다. 학기 초에 독서 모임 책과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잔뜩 신청했다. 독서 모임 책 중 이미 1권은 읽었고 2권도 이미 사버린 책들이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꼭 읽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새책 냄새를 맡으며 행복하다. 그중에 내 눈에 들어온 매력적인 제목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

 보는 순간 제목만으로도 딱 내 얘기 같아서 얼른 업어왔다. 매일매일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산만한 인생. 무엇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 주변을 둘러보니 집도 정리정돈이 되어있지 않고 벌려둔 일은 많아서 할 일은 태산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런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부리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짜증은 다 누가 받을지 상상은 맘대로.


멀티태스킹이 유능한 게 아니었어.



어쩐지 머리가 예전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 적이 많다. 치매도 아닌 것이 자꾸 이해력도 떨어지고, 연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버퍼링이 일어난다.

"그거, 뭐였지? 무슨 단어더라?" 혹은 "걔, 있잖아. 그 연예인. 슬의생에서 겨울인가 가을인가 하는 의사랑 좋아했던. 키 크고, 이름이 뭐였지?"


나의 지금 IQ는 몇 살인가? 심히 의심스럽다. 돌려줘요, 제발 내 집중력. 내 직업의 특성상 집중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요즘 시대가 그런 환경에 처해 있다. 음악을 들으며 수학 문제를 푸는 아들, 공부하다 말고 폰을 들고 딴짓을 하는 딸의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도둑맞은 게 틀림없다.


출처 : yes24 캡쳐


아직 읽지 않은 강렬한 빛깔의 책이 나를 노려본다.


'알았어요, 알았어! 집중해서 읽어볼게요. 이것만 확인하고요.'




메인사진 : AI 뤼튼이 그려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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