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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Apr 26. 2024

인생에 찾아온 감기

앓고 나면 알게 되는 것들

그녀의 감기가 도통 낫질 않는다. 일주일째 그녀는 결근이다. 처음엔 감기로 하루, 다음엔 조퇴가 잦아지더니 급기야 일주일째 출근하지 않았다. 이유는 감기였지만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감기가 맞나?'


첫 발령을 받고 N학교에 근무를 하던 그녀는 올해 2년 차 교사이다. 그녀의 첫 이미지는 매사 똑 부러지고 단단해 보였다. N학교에 발령받고 낯설었던 나를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1년을 준비하는 2월에는 점심을 같이 나누며 살아온 각자의 삶을 공유하기도 했다. 내가 일찍 결혼했다면 나이로는 내 딸이 될 수도 있는 나이. 하지만 딸처럼 여겨지기보다 학교 안에서는 든든한 동료로 여겨졌다. 묘하게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던 우리는 돌아왔던 인생길이 비슷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걷다가 멈춰서 다른 것을 해보기 했던 우리. 배움에 대한 기쁨이 커서 인생을 탐색하고 혼자서도 멀리멀리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우리.

같은 학년은 아니었지만 같은 학년군으로 묶여있던 우리는 서로 챙겨주며 3월을 무사히 넘기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오늘은 오려나? 교실을 둘러보기도 하고, 없는 빈자리 쉬는 시간, 보결 수업을 위해 교실을 찾아들어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손이 많이 가는 학년. 아이들 인원수도 많고 말썽꾸러기들이 몰려있는 교실.

'우리 선생님, 힘들었겠구나!'

바쁘고 힘든 3월 그럼에도 그녀는 힘들다는 표현도 잘하지 않았던 터였다. 학기 초에 한번 내 교실에 들러서 싸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이후엔 언제나 씩씩한 모습이었다.

'많이 아픈 건가?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하며 들러 교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탔다. 교무실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교감 선생님의 신음에 가까운 한숨 소리.

"흐음..."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끝나자마자 긴급회의가 열렸다.

"E선생님이 의원면직을 신청하셨어요. 그래서 대책 회의를 하려고 합니다."

 나는 뭔가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녀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돌려보았지만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물론 성인이고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마치 다 결정나버린 것처럼 다음 대책을 세우고 기간제 선생님을 알아보는 게 우선되면 안 되는 거다.

나는 그녀가 걱정되었다. 만나고 싶었다. 필요한 서류 절차를 밟으러 학교에 온다는 교감 선생님의 말을 전해 듣고, 나와 몇 선생님들은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옆에 있었는데도 들어주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아팠다. 바쁜 3월. 내 앞가림을 하느라 살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고, 한편 그렇게 내색도 없이 말 한마디 없이 결정해 버렸다는 게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정을 내렸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녀를 계속 붙잡았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 콧물 빼며 설득해 보았지만 울기만 할 뿐 그녀는 움직임이 없어 보였다. 어렵게 임용고시 합격해서 교사가 되었을 텐데. 이렇게 쉽게 던질 일인가?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가슴에 고구마가 걸린 듯 속이 답답했다. 그리고 아팠다. 자꾸만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그녀를 작별인사처럼 안아주고 교실로 돌아와 퇴근하지 못하고 오래오래 교실에서 생각에 잠겼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묻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왜 그만두려고 하는 거예요?"
"안 맞는 거 같아요. 작년에도 몸이 아파서 잠깐 쉬기도 했지만 안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 교사라는 직업이 쉽지 않아. 그런데 어떤 누구도 나랑 100% 나한테 찰떡이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없어요."

"......"

"교실에서 선생님이 무슨 큰일이 있었거나, 일을 못하거나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네, 그건 그런데 제가 뭔가 잘 못하는 거 같아요."

"선생님이 얼마나 야무지게 일도 잘하고 아이들 사랑하는 모습이 느껴지는데, 무슨 소리!"

"......"

"살면서 늘 어려운 일은 닥쳐요. 나도 10년 차에 매일 울면서 출근하던 때가 있었어요. 매일 그만둘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작년에도 힘든 읽을 겪으며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정말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왜 없었겠어. 선생님은 그런 일 아직 없었잖아요. 이 일이 내게 맞고 안 맞고는 아직 몰라. 나는 지금 너무 좋아요. 힘든 순간은 매 순간 찾아오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힘든 만큼 가치 있고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지 마요, 아직."

"감사해요."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면 그랬겠어? 알지만 힘들게 들어온 교직을 쉽게 던지지 말아요. 일단은 쉬면서 다시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직 사직서를 내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따뜻해요. 이렇게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정말 못할 거 같아요."

"오늘 잘 생각해 봐요. 부모님과도 상의해 보고. 나는 선생님이랑 같이 올해 서로 다독다독 의지하며 즐겁게 지내고 싶어요. 선생님을 만나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냥 이렇게 그만둔다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지금은 몰라. 당장 힘들어서 떠나고 나면 지금 그 자리가 떠오를지도 몰라요. 지나고 나면 별개 아닌 일이 되기도 하고."

"네, 좋은 말씀 감사해요."

"선생님 옆에서 보니까 정말 일도 잘하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이에요. 그런데 왜 자꾸 그만둘 생각으로 결론을 내려요?"

"어깨가 너무 무거워요. 아이들도 예쁘고, 업무도 힘들지 않은데 한 명, 한 명 이 아이들을 제가 돌보며 책임감이 느껴져서 너무 무거워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그랬구나, 그랬구나. 당연히 내 반에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인데 그런 맘이 들지요. 당연한 마음이에요."

"저는 그래서 못할 거 같아요. 죄송해요, 선생님!"

"왜 선생님이 나한테 미안해요.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이 힘들어하니까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누구나 갖는 부담감일 거예요. 살면서 힘들지 않은 일은 없어요. 어떤 일을 하든 그 나름의 어려움이 다 있어요. 대상이 달라질 뿐이에요. 교사로서 좋은 일도 얼마나 많은데. 나도 이제야 진짜 알 거 같은 걸. "

"진짜요?"

수화기 너머로 눈물을 삼키는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몸도 아프니까 푹 쉬었다가 내일 나와서 그냥 좀 쉬겠다고 말씀드려요. 응?"

"생각해 볼게요."

"기다릴게요. 진짜 그만두겠거든 정해지면 그때 그만두어도 늦지 않아요.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얼마든지 생각하고 쉬어요. 다른 일을 찾고 해 봐도 괜찮아요. 하지만 섣불리 던지지 말아요."


작고 예쁜 우리 선생님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결정하지 않길 바랐다. 이미 낸 사직서를 회수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결정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는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그런 일들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그녀의 인생에서 진짜 이게 맞는 결정인지를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면 좋겠다. 여기서도 버티지 못한다면 어디에 가서도 힘들지 모른다. 그녀가 한 고개만 넘어보면 어떨까 싶다. 어렵게 넘더라도 우리가 곁에서 손잡아주고 힘이 되어주면 이 고비를 넘기는 건 좀 더 쉽지 않을까?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우리 선생님에게 좋은 시간이고 선생님이 가진 복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녀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녀는 그 다음날 서류를 제출했다. 사직서가 아닌 병가 서류로. 교감 선생님에게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겠다고 사직서를 다시 취소해 달라고 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같이 손 잡고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선생님들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던 것 같다. 어떤 것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그녀의 확고했던 마음을 잠시 돌려놓았다. 아직은 모르겠다. 이렇게 붙잡은 것이 맞는 것일까? 누군가의 인생에 함부로 끼어든 건 아닌가. 물론 이 또한 그녀의 결정이었고 견뎌낼 몫일 테지만.


무조건 교사로 남아있어 달라는 바람은 아니었다.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있다는 것을 해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보면서 깨닫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길이 힘들지는 모르지만. 다만 내내 너무 힘들어 정말 못하게 될지라도 넘었던 고개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져 있을 테니까. 아프고 나면 훌쩍 크는 아가들처럼.

감기를 앓고 나면 한층 더 커져 있겠지, 괜찮아질거야.



한편, E교사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신규 교사 S. 그녀는 첫날 내 교실로 찾아왔다.

"오늘 힘들었지?"

이 한마디에 눈물이 터진 우리 S 선생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전담에서 담임으로 바뀌고 업무도 덩달아 변경되고, 아이들도 여간 극성이 아니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울음이 터진 꽃처럼 예쁜 신규 선생님을 안아주며, 아등바등 이리저리 치이고 스스로 부족함에 힘들었던 어리바리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울고 있는 후배 교사를 보면서 나도 그랬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자꾸 '라떼는 말이야.'를 덧붙이게 되었지만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길 바라본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신규라서 할 수 있는 실수 다 해도 돼요.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저 선생님이 가진 모습 그대로 맘껏 펼쳐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으니 활짝 펼쳐도 되어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넘어져도 되고 아파도 돼요.

대신, 혼자 울지 말고 이렇게 달려와요."


눈물 콧물 쏙 빠지게 매운맛 나는 인생이기도 하지만 달콤하고 행복 가득 풍미 가득한 맛도 있다는 것을 감기를 앓고 난 후에 알게 되기를 바란다. 여전히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감기를 앓으며 골골대며 약하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그녀가 어떤 답을 들고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그저 잘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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