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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15. 2024

편지에 담긴 것은

잘하고 있다는 응원의 말

"선생님, 나 안 해!"

어떤 수업을 하든 1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하마드. 한국말도 서툰 대다가 한글을 여전히 어려워하니 내가 하는 말들이 공중으로 흩어져 모하마드의 귀에 닿지 못하나 보다. 처음에는 천천히 이야기해주고 설명도 다시 해주고 옆에서 도우미 친구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모하마드는 여전하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제 겨우 친구들이 꺼내는 교과서를 보고 뒤늦게 꺼내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옆짝꿍이 얘기하지 않으면 먼산. 아랍어로 궁시렁궁시렁 혼자 놀이를 한다.


말을 못 알아듣는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태도의 문제다. 머리를 쓰는 걸 보면 회전도 빠르고 이해도 빠르다. 다만 성실한 자세, 노력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비슷한 시기에 온 아시드는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되어간다. 1년도 안 된 그 시간 동안 한글도 다 정복했고 어떨 때는 여느 아이들보다 뛰어나다. 2학기부터 독서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2-3권 기록하고 느낀 점을 쓸 때, 아시드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이 읽고 싶고 더 많이 채우고 싶어서 학교에 일찍 온다. 다른 친구들이 1장을 쓸 때, 아시드는 2장을 쓴다. 각자의 속도가 있고 비교하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모하마드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출처=픽사베이

"모하마드, 해야 하는 것은 힘들어도 하는 거야. 모하마드도 할 수 있어."

"몰라, 나 안 해."

"다시, 얘기해 주세요!"

"나 안 할래요!"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에 모하마드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활동을 줄이고, 쉬운 것으로 바꿔서 해주었지만 어느새 모하마드는 특권을 누리듯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작전을 바꾸어 수업 시간에 끝내지 않으면 쉬는 시간에도 붙잡고 활동을 다 끝내도록 하거나, 수업 시간이 끝나고도 다하지 못한 것을 완수하도록 했더니 꾸역꾸역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 기대치가 낮은 이유일까. 글자 하나를 읽어도 물개박수를 쳐주고, 놀라운 눈빛을 보낸다. 정말 놀라워서다. 얼마 전에는 받침이 있는 글자도 읽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선생님, 나 알아, 이거. 잘 해써? 마자?"

"오, 모하마드! 진짜 한글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잘했어!"

학교에서 반은 나와 '야자놀이'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존댓말이 어려워서일까, 습관일까? 매번 '다시 이야기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하고 가르쳐주기란 쉽지 않으니 그냥 넘어갈 때도 많다. 남아서 공부를 시키다 보면 속이 속이 터져서 자식 같으면 벌써 원수가 되었을 건데, 귀하고 귀한 아이에게 차마 화내지 못하고 기다리고 기다린 세월이 스치고 지나간다. 몰라서 속이 터지기도 하지만 얼마나 장난꾸러기인지 일부러 엉뚱하게 대답하기도 하고 도망을 다니기도 해서 앉히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다행히 한글을 제법 읽을 수 있으니 이렇게 하다 보면 2학년으로 무사히 올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남아있지만.


학기 초, 가장 기운을 많이 뺀 것은 급식 시간. 유치원 다닐 때부터 유명했는지 유치원 선생님도 고개를 절레절레. "힘드실 거예요. 진짜 잘 안 먹어요. 그래도 이게 좀 나아진 거예요, 선생님!" 하신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앞에 갖은 인상을 다 쓰는 모하마드. 밥 한 숟가락 입 가까이 대고 몇 번이고 망설인다. 정말 먹는 게 이리도 괴로울까.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건 아닐까, 다른 아이보다도 마르고 작은 이 아이가 걱정되어서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지만 낯선 음식 앞에 입을 열지 않는다. 마음도 열지 않는다. 겨우 하얀 쌀밥만 마른 입에 넣고 꾸역꾸역 녹여 먹는다. 쌀밥에 콩이나 조, 잡곡이라도 들어가면 그걸 가려내느라 먹고 싶지 않아서 고집을 피웠다. 즐거운 밥상 앞에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자니 내 밥도 모하마드 밥처럼 맛이 없어진다. 속이 상하고 밥을 먹고도 기운이 쭉 빠지기 일쑤였다. 급식실에서 이렇게 할 일인가. 아이들이 다 먹고 간 뒤, 다른 학년들이 먹고 밀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급식실 조리사님들이 식탁을 닦고 청소를 시작할 때까지 나와 모하마드는 마주 앉아 밥 한 숟가락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출처=픽사베이

그냥 두고 나가고 싶은 순간들도 너무 많았다. 내가 뭐라고. 집에서도 못 먹이는 밥을 내가 무슨 수로 먹이나. 이렇게 먹여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아이가 조금씩이라도 먹고 건강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적응하고 살려면 음식 맛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놓지 못했다.


급식실에서 선생님들이 한 번씩 떠서 입에 넣어주려 애쓰기도 하고, "얼른 먹어!" 하며 눈짓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먹는 것을 즐겨하는 아이가 아니기도 하고, 편식이 너무 심해서 집에서도 걱정이지만 밥을 안 먹으면 과자, 음료수, 감자칩이나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운다는 이야기를 듣자니 기운이 빠졌다.


2학기가 되어서야 조금씩 밥 먹는 게 수월해졌다. 다른 반찬은 잘 먹지 않더라도 밥을 다 먹는 날이 많아졌다. 이 아이도 애쓰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겠지.

"밥 다 먹었어? 잘했어, 모하마드!"

다른 아이들은 밥도 반찬도 다 먹어야지 칭찬해 주는데, 모하마드는 밥만 먹어도 폭풍 칭찬을 하게 된다.

"선생님 나 더 먹어?"

"밥 더 받을 거야? 진짜, 더 먹을 수 있겠어? 와!"

이게 뭐라고 지나가는 선생님 길을 막아서고 큰 소리로 소문을 낸다.

"선생님, 우리 모하마드 밥 다 먹고 한 번 더 받아서 먹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내가 알려주고 싶은 수많은 가치들보다 일상적인 것에 에너지를 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습관들이 중요함을 알기에 내내 놓치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알려준다. 그 과정이 지리하고 피곤하고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또 행복한 순간이 온다. 모하마드가 밥을 다 먹거나 글자를 읽거나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시간 맞춰 안아서 교과서를 꺼내어 준비할 때. 수업 시간 중에도 수십 번 나와서 '배 아파', '쉬', '안 해', '몰라'를 외쳤던 모하마드. 이젠 조금씩 달라져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 때 나는 행복하다.


모하마드처럼 다른 아이들을 지도한 때 또 다른 어려움을 매 순간 겪는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기쁨들과 그저 존재만으로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순간들이 있기에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하고 힘차게 걷게 한다.


아침마다 학교에 도착하면 나를 맞아주는 아이들.

"선생님!"

와락 안기는 아이들. 어찌 저리도 해맑을까. 피곤했던 어깨가 입꼬리처럼 봉긋 솟아올라 마음마저 산뜻해진다.


오늘 아침에는 잘 익은 감처럼 달콤하고도 깊은 마음이 담긴 편지를 전달받았다.

"선생님, 이거 편지예요."

색종이로 봉투를 만들고 그 안에 오밀조밀 초성퀴즈에 담긴 '사랑해요!'와 혜솔이의 감사 메시지가 들어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잘하고 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너의 편지는 나에게 주는 응원의 말이었어!

나는 혜솔이의 편지가 찡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나에게 감사하다는 혜솔이의 말이 오히려 "선생님, 지금 잘하고 있어요. 힘내세요!" 하는 응원의 글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혜솔이에게 받은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했다. 그저 받는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대신 이곳에 나의 마음을 남겨본다.


사랑하는 혜솔이에게


혜솔아, 고마워.

너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몰라.

선생님이 힘들고 지쳐서 바닥에 털썩 앉을 뻔했는데

너의 말에 구부러졌던 허리가 펴지고

가슴이 활짝 펴쳐서 행복이 꽉 들어차 올랐어.

혜솔이가 선생님에게 감사하다고 했지만

선생님이 더더더 고맙고 감사해.

사랑해!



오늘도 힘을 내어 볼게, 너희들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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