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시간 오랜만에 이른 식사를 마치고 학교 주변을 거닐었다. 가을의 쌀쌀함이 짙어야 할 11월 중순, 봄날처럼 따스하다. 햇살이 기분좋게 눈부시고 선홍빛깔의 이파리들이 파란 하늘을 가르며 반짝거렸다. 요리 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이럴 때 사진 좀 배워둘 걸. 생각으로는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찍고 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눈으로 담는 만큼 담아낼 수는 없는 걸까.
고맙게도 아직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들과 하늘이 참말로 잘 어울린다. 꽃밭으로 발을 들여놓자, 폭신한 땅에 기분이 살랑거린다. 초록초록 하던 밭은 떨어진 지 오래된 갈빛의 마른 잎들과 바람에 살랑이며 갓 떨어진 짙은 색의 잎들이 조화롭게 흩어져있다.
햇살도 좋고, 오색찬란한 낙엽의 빛깔들이 참으로 곱다. 세월따라 떨어지고 시들고 짙어가는 갈색 사이로 노오랗고 작은 꽃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어, 이거 뭐지?"
"선생님, 뭐하세요?"
"낙엽이 너무 예뻐서 사진 찍는 중이었어. 근데 여기 꽃이 피었어."
"우와, 예쁘다!"
나의 이름은 괭이밥, 너무 따뜻해서 나왔지롱!
출처 = 나무위키 참고
무슨 꽃인지 검색했더니, 이름이 익숙한 '괭이밥'이었다. 고양이가 소화가 안 되거나 탈이 났을 때 약용으로 뜯어먹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잎이 클로버와 비슷하게 생겨서 자주 혼동하는 식물이기도 하단다. 이 꽃은 5월~8월에 핀다...고? 세상에, 얼마나 따뜻하면 봄인줄 알고 피어난 거니?
점심 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들에게 예쁜 괭이밥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와, 진짜 예쁘다. 무슨 꽃이에요?"
"이 꽃의 이름은 괭이밥이야."
"너무 예쁘지? 그런데 이 꽃은 원래 5월~8월에 피는 꽃이래. 그런데 왜 11월에 태어났을까?"
"지구가 더워져서 그래요."
"맞아, 이 꽃을 만나서 너무 예쁘고 좋았지만 알고 나서는 조금 슬픈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지구를 지켜요!"
1학년을 키우는 맛, 나는 이 맛에 힘들어도 1학년을 사랑한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이들, 배운 것을 실천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나의 아이들. 봄처럼 따스한 너희를 봄을 지나 여름, 가을을 맞고 이젠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그 계절마다 나는 따뜻한 봄처럼 보냈다. 덕분에. 힘들었던 기억보다 봄처럼 따뜻한 시간으로.
그나저나 식물들도 어떤 계절인지 헷갈리는 요즘.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을 보며 마음이 무겁다. 11월 중순인 어제, 걸친 가디건에 덮힌 등에서는 땀이 주루룩 흘릴 정도로 더운 봄같은 날씨였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땀을 줄줄 흘리며 부채질을 했을 정도였다. 다시 내일부터는 갑작스레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옷장에 뒤죽박죽 섞인 여러 계절의 옷들을 보며 요즘의 날씨를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