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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Nov 23. 2024

<차곡차곡>에 비친 마음

1년 보고서 - 무엇을 쌓고 계신가요?

시간이 흘러갑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의 길에 무언가가 놓이기 시작합니다. 흩뿌리듯 지나가는 장면에 묻어있는 가벼운 때로는 무거운 감정들이 쌓입니다.


켜켜이 쌓아 올려진 1년의 시간에, 10년의 시간, 20년의 시간, 40여 년이 그려집니다.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이지 않아서 한꺼번에 무너질까 싶지만 건드리지 않으면 그 기억들은 고스란히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사진처럼 색이 바래지고 책꽂이에 쌓인 책처럼 먼지가 쌓이고 누렇게 변할 테지만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차곡차곡> 책을 보는 순간, 마음이 정갈하게 가라앉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내 손에 들어온 책 한 권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니, 참 많은 일들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다른 해들의 후회스러움, 아쉬움들 보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날들에 박수를 치게 됩니다. 올 한 해 차곡차곡 잘 쌓은 모양입니다.


영화를 보면, 왠지 눈물을 흘려야 제 맛일 것 같고, 술을 한 잔 기울이면, 왠지 아쉬운 소리 하며 쓴웃음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도 돌아보며 왠지 아쉬워하거나 후회해야 할 것 같은데 왠 걸요. 올해는 아직 남은 한 달이 더 기다려지고 기대가 되는 마음이 듭니다.


1년 동안 쌓았던, 쌓이고 있던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차곡차곡>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들을 훑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봄

올해 저는 먼 길 돌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가족이 뭉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우당탕탕 함께 모이니 시끄러울 일이 더 많아졌지만 금요일 오후부터 짐을 싸거나 일요일 저녁마다 집 떠나며 서글픈 마음을 길에 흘리며 밤길 운전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그 시간에 가족과 치킨을 시켜서 금요일 밤을 즐기고, 매일 함께 밥상을 차리는 시간들이 생겼습니다. 단출했던 일상과 편안함은 줄었지만 시간을 함께 '차곡차곡' 채우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땀 흘리며 운동해 본 기억이 별로 없는 저는 이제야 남편과 끙차끙차 힘을 쓰며 근육을 만들고, 땀을 흘리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허리 숙여 머리도 잘 감지 못하던 제가 예전보다 더 오래 버티는 힘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쭈그려 앉으면서 에고에고 소리 내던 제가 학교 텃밭에서 아이들과 삽질을 하고, 낫으로 고구마를 캐고 무거운 고구마 박스를 옮기고도 그다음 날 끄떡없었습니다.


아침에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며, 한방 가득 어지르는 사춘기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며 잔소리를 내뱉고 속에도 없는 말을 뱉어내면서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사진으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새로 옮긴 일터에서도 그리웠던 이들은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된 채, 새로운 인연들의 끈을 이어서 조금씩 적응하고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저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면서 그렇게 내 자리에서 일하며 조금은 외롭지만 슬프지 않은 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조각났던 주말이 내게 주어지니,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커가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도서관에서 종일,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늘어놓고 맘껏 하는 시간들을 즐기며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만끽했습니다.


#여름

뜨거운 여름답게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도전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길고 긴 집라인을 타고,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짜릿한 순간을 남겼습니다. 날아올라 벅찬 흥분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늦지 않았구나!'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잊었던 것들을 하나씩 더 꺼내게 만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더 활짝 피어올랐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즐기는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해보면 되지 뭐,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 대로! 새로운 것들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즐기는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설프게 만들더라도 우리끼리 즐기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해 나가는 기쁨이 채워졌습니다.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 즐겁게 하다 보니 긴장이 풀어지고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가운데, 그동안 살면서 바라던 인연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힘든 일도 지쳤던 일상도 러닝 머신에서 달리며 땀으로 날리고, 그 끝에 시원한 맥주로 마무리하는 일상도 여름날의 한 페이지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눈물도 떨구어 얼룩지기도 했지만 맥주의 시원함과 뜨거운 사랑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접혔던 마음이 활짝 피어오르는 여름날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안부 전화를 자주 하며 보고플 때 차를 몰고 달려가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일상의 이야기도 나누고, 부모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을

지난가을, 브런치를 만나 글을 쓴 지 1년이 되었고, 올 가을에도 글 쓰는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작가의 서랍에 쌓인 글, 차곡히 쌓인 글들을 보니 나의 한 해를 잘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글을 쓰려면 제대로 써야 한다고 하고 일단 많이 써보라고 하기도 합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글을 자주 쓸수록 느는 것은 맞지만 쓴 글들을 정성껏 퇴고하고 누군가가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는 글, 감동하는 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브런치 글로 책이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었을 때, 또 읽고 싶은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었가?를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봐도 부끄러운 글도 있고, 부족한 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는 것은 그 길로 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낙엽처럼 제 인생에 걸음마다 뿌려진 이야기들이 차곡히 쌓여있습니다. 그리고 쌓이는 중입니다. 걷어내고 싶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 또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이라 믿습니다.


내일은 시댁에서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무채를 썰고 양념을 버무려 숨 죽인 배춧잎 켜켜이 빨간 양념을 넣을 것입니다. 소금을 뿌리고 시간이 지나도 무르지 않고 아삭함이 살아있는 김치를 기대합니다. 맛도 있고요. 1년 내내 김장 김치는 내년에 든든하게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시어머님의 오랜 손맛을 믿습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요. 저도 제가 만들어내는 인생의 양념이 누가 먹어도 맛있을 김장 김치처럼 잘 익히고 싶습니다. 누구도 보장할 그 맛을, 글맛을 내고 맛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나로 그렇게 서 있고 싶습니다.



#겨울

퇴근길, 작은 트럭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릅니다. 붕어빵을 굽는 냄새가 발길을 머무르게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크림맛 붕어빵 4개, 남편이 좋아하는 팥이 들어있는 붕어빵 4개가 든 종이 봉지를 가슴팍에 감싸 안았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조금이라도 덜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요. 대신 제 몸도 마음도 따뜻합니다. '와, 붕어빵이다!' 하는 반가운 소리를 들을 기대만으로요.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었고, 올해의 마지막 계절이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에 차곡차곡 또 무엇을 쌓게 될까요. 지금처럼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소중한 한 줌의 이야기들을 쌓아 결들이 만들어지는 인생의 지층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눈이 오면 미끄러운 길을 걱정하는 대신 반가운 마음으로 첫눈을 반갑게 맞이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이면 그 귀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낼 것입니다. 작년에도 눈은 왔지만 올해에는 또 다른 눈일 테니까요. 겨울은 춥지만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추억의 한 조각들을 눈처럼 쌓아보렵니다. 혼자서 오롯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익어가는 시간도 가져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시간 속에서도 소중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이야기들을 저에게도 들려주시기를 기다리며 귀 기울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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