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숲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 여행을 가면 뻥 뚫린 하늘과 맞닿아 있는 끝없는 산등선들과 길 따라 펼쳐지는 논길에 반한다. 하지만 늘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별다를 것도 없도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거기에 산이 있을 뿐이고, 강이 흐를 뿐이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평범한 풍경에 불과할 것이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운동하면 보이는 것들이 생기더니, 운동이 일상이 되고 나니 처음에 거기서 보였던 것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늘, 일상 속에서 한동안 감겨있던 눈이 떠졌다. 오랜만에 '운동하면 보이는 것'이 생겨 한 꼭지 기록해 본다.
스트레칭을 하고, 팔다리 근육 강화 운동을 하고, 데드리프트를 하며 허리에 힘을 주다가 새로운 운동 기구 가까이 다가갔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트레이너 선생님이 허리에 무리가 가는 운동이니 내게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던 운동기구였다. 그의 이름은 '스텝밀'. 친구가 헬스장에 가면 땀 흘리며 꼭 하고 온다는 '지옥의 계단'이었다. 땀을 빼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나 보고도 해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설명서도 친절하게 되어있는데, 왠지 나를 믿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혹시, 사용법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늘 우직하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친절하게 운동 기구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 운동기구가 10분만 해도 엄청 힘든 거라서요, 버튼 누를 힘이 없으실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손잡이를 잡고 걸으시다가 엄지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시면 바로 멈출 수 있어요."
역시 대면이 최고다. 말로 설명해 주고 보면서 이야기해 줘야 이해가 빠르다. 간단하지만 안심되는 설명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지옥의 계단을 3-4분쯤 오르고 있으니, 옆에서 남편도 계단에 올랐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
"이것이 바로 지옥의 계단이래. 엄청 힘들대."
"지옥은 무슨, 천국의 계단이지!"
"왜?"
"계단을 오르면 건강해지고 살도 빠지니까 천국의 계단이지."
"그래?"
"천국을 가려니까 힘든 거지. 지옥으로 가는 건 쉬워."
"지옥으로 가는 게 왜 쉬운데? 어떻게 하면 지옥으로 가는데?"
"그냥 나락으로 떨어지면 돼."
그 짧은 시간, 나는 그가 참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던 그 시기에도 나라면 펄쩍펄쩍 뛰며 울고 불고 난리를 쳤을지 모르는데 늘 얼굴이 평온했다. 다시 한번 남편의 장점을 끌어올렸다.
시간이 지나자 다른 운동과는 달리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야, 이거 힘든데?"
남편은 엄지 손가락으로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져 나갔다.
"뭐야, 고작 4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야?"
"나 아까 이미 러닝을 40분 넘게 해서 그래."
그의 지옥의 계단 고작 4분이라니!
10분을 버티고 땀을 흘리며 천국의 계단을 올랐다. 끝없이 내려오는 계단을 밟으며 '지옥의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남편의 말처럼 '천국의 계단'을 올랐더니 힘이 났던 모양이다. 정작 그 말을 들려준 남편은 '지옥의 계단'이 되어 나가떨어졌지만 나는 무사히 '10분'을 버텼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지옥과 천국의 사이를 오갔다. 내일도 나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