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3kg의 덤벨을 두 손으로 들어 등 뒤로 보낼 때 어깨가 꺾이는 느낌이 너무 무서웠다.
'잘못되는 거 아냐?'
몸을 사리며 움츠려든 내 마음도 몸도 이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워낙에 근력이 없던 나에게 조금만 묵직한 덤벨도, 커다란 기구들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혼자서 야몽야몽 5kg의 덤벨을 삼키고 있다.
'어랏 왜 이렇게 가볍지? 잘못 들었나?'
처음에 비해 고작 2kg이 넘었을 뿐이지만 더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는 나를 보며 왠지 으쓱해진다. 남편의 이두박근이 단단하게 솟아오르거나 다리 근육이 결 따라 다져진 근육의 자태를 보여주진 않지만. 혼자서 은밀하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변화지만 신기했다.
날마다 나를 훈련시켰던 헬스장에서의 다양한 기구들. 처음엔 10kg를 두 손으로 잡아 올리더니 점차 15kg~20kg으로, 20kg 무게를 다리로 겨우 들어내던 다리는 기특하게도 이젠 35kg을 들어 올리는 힘이 생겼다. 매일 조금씩 다니는 동안 보이지 않게 조금씩 근육이 생기고 무거움을 견디는 힘이 늘어났을 테지.
'으아' 소리를 내며 허리 힘으로 다리를 드러내던 신음 소리도 점차 잦아들고, 더 많은 횟수를 견뎌낸다.
살아가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는 날마다 늘어가고 그만큼의 무게만큼 단단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초등학교 1학년 빨간색 가방에 노란 금테 버클이 있던 가방. '딸깍'하고 소리 내고 들어갔던 책가방에 교과서를 집어넣었다. 새로 산 길쭉한 연필을 정성껏 깎아서 필통에 꽂아 교과서 사이에 넣었다. 달그락 거리는 가방을 들자, 나는 휘청거렸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흰색 손수건에 핀을 단 명찰을 달 때, 처음 학교를 가는 나에겐 설렘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학교는 왠지 무서운 선생님이 계실 것만 같은 두려움이 스며들기도 했다.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가방은 어느새 무거운 줄도 모르고 가방을 메고 뛰어다녔으니, 그 사이 나는 훌쩍 자랐을 것이었다. 가방의 무게만큼, 학교 생활에 대한 나의 마음도 좀 더 영글어졌을 것이다.
부모님의 품에 언제나 작고 여린 나로 살 것 같았다. 그런 그 아이가 책가방 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서 한 교실을 책임지고 업무를 해내는 교사로, 가정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가족 안에서 도맡아 해야 하는 여러 역할들로 사회에서 원하는 다양한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작은 씨앗은 누군가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가 된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인연을 맺고, 헤어지고 하면서 나는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지금의 나라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럼에도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의 바벨들이 나를 훈련시키면서 삶을 들어 올릴 힘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흔들거리다가, 비틀거리다가 바벨을 떨어뜨리는 순간도 있지만 이내 다시 중심을 잡고 들어 올려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기에 그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만나는 상황에 따라, 그날의 마음가짐에 따라 가볍게 느껴지는 날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누군가 나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기도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면 힘이 보태어진다. 바로 그때 다가웠던 일들은 지나가고,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들어 올린 바벨을 멋지게 내려놓는다.
'으라차차차~'
자신보다도 훨씬 무거운 바벨을 다부지게 잡고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들처럼 오늘도 나는 삶의 무게를 들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