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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Nov 07. 2023

서른넷의 나는

서른 넷이라니. 여전히 마음은 열일곱의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때만큼 자주 웃는 일은 없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를 바가 없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완전히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어른'이란 단어를 덧붙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한 인간이다. 누군가는 순수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정말 변함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떨 때는 좋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쭉 똑같은 사람으로 늙어갈까 두렵다.


10대 때도, 20대 때도 내 내면은 가지각색의 감정과 생각들로 마구 휘몰아치는 일들이 잦았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조금은 달라진 내 내면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고통에 취약하고, 상처를 잘 받는 '쿠크다스형' 인간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든 회피하거나 튕겨내려고만 했다. 치과위생사로 일한 12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오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시도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의 입장, 나의 고민,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얼마나 힘든 가에 관해서만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잦은 이직과 불안정한 상황. 그것들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 갔다. 1년 차 때는 한 직장에 3년 넘게 일했고, 그다음 직장도 3년을 넘게 일했다. 그러나 그 후부터(정확히는 중간 연차부터) 오래 다녀보아야 1년 좀 넘게 일했고,  짧게는 5-6개월 만에 관둔 치과도 더러 있었다. 


물론 사람이 계속 바뀌는 직장은 이유가 있다. 정말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곳은 일단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기대'하는 게 문제였다. '나에게 이렇게 대해줘야 해. 내가 이만큼 능력 있는데. 내가 이만큼 회사에 보탬이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하는 생각들은 실제로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들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는 내 인생에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좌절했고, 무너져 내렸다. 호기롭게 백수 생활을 선언한 후에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자의식을 해체하지 않은 채로 나는 합리화하는데만 급급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이직을 했다. 1년 하고 조금 넘는 기간을 다녔던 직장을 퇴사한 후, 새로 입사하게 되었다. 새로 입사한 직장도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했고, 직원들은 직장에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직원이 계속 바뀌는 직장이라고 해도 오래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다. 나는 비로소 지나쳐 온 직장들에 오래 남아있던 직원들을 떠올려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들을 무시하기 바빴다. '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런 대접을 받고 계속 다닌다는 게 신기하군.',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데 정작 안타까워할 건 나 자신이었다.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지금 내게 주어진 다른 것들에 집중하지 않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잦은 이직을 경험한 나는 더 이상 바깥의 것들에서 이유를 찾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건 내가 어떻게 느끼는 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직장에 어떤 빌런이 있어도, 어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간다. 매번 별 거 아닌 일들로 내게 주어졌던 좋은 기회들을 날린 나를 반성한다. 돌이켜보면 정말 나쁘고 이상한 곳은 몇 곳 되지 않았다. 대부분 장점도 많았다. 단점에 집중하면서 나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서른 중반. 비단 직장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결혼, 인생에서 닥쳐오는 고난과 시련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20대 때와 확실히 달라진 점은 어떤 일에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않게 되었다. 참나무처럼 꼿꼿하게 버티려고만 했던 그 시절에서 얻은 상처는 내게 삶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지금 나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따라 휘어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삶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고, 어쩌면 나는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삶이 주는 모든 배움을 다 흡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며 받아들일 줄 아는 한 인간이 되고 싶다. 20대 때만 해도 그저 삶이 평온하기만을 바랐다. 아무 일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안일한 생각인지를 여실히 느낀다. 멈춰 있는 인간, 흐르기를 거부하는 인간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한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강렬하게 흐르는 바다 같은 인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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