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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Nov 13. 2023

시시껄렁한 것들

“똑똑한 것들을 사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시껄렁한 것들을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내가 여전히 시시껄렁한 사람이라 여겨지는 이유는 그동안 그런 것들만을 집중해서 사유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어떤 걸 사유하느냐는 자유다. 어떤 게 나쁘고, 좋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나 자신이 ‘시시껄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대체로 어렵고 힘든 생각 거리나 문제들을 싫어해서 회피하는 경향이 짙은데, 그럴 때마다 쉽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책들을 찾아 읽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잠깐의 기분은 나아졌으나, 나는 더 퇴화되어 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습관은 무서워서 아직까지도 나는 그런 행위를 반복한다. 쉽고 쾌락적인 것. 그리고 합리화에 능한 장인이다. 그리고 내가 맞이하는 것은 허무함과 허탈감이다.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은 느낌. 나는 똑똑한 것들을 사유하고자 했으나,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것들을 마주할 용기가.


언제나 나는 잘 읽히지 않는 것들이나 어려워 보이는 무언가가 있으면 포기하기 십상이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 읽었다 ‘고 착각하거나, ’ 생각해 봤어.‘라고 섣부른 판단을 해버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니 발전이 더딜 수밖에. 나의 이상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저 하늘 높이 있는데, 나는 겨우 지상 위를 기어 다닐 뿐이니. 독수리가 되고 싶으면 우선 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나는 지렁이가 어떻게 기어 다니는지에 관해 배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깊고 다양한 사유를 하길 원하지만, 내 행동은 늘 정반대여서 나는 결국 시시껄렁한 사람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 만난 이 문장은 마치 잔뜩 얼어 있는 수면 위를 날카롭고 예리한 도끼로 깨듯, 내 안으로 굽이쳐 들어왔다. 살아가는 데 꼭 똑똑한 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똑똑한 사유는 필수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지금껏 인식하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해 준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그 무엇보다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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