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위로하고, 섣불리 공감하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신중하게 타인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나 또한 없지 않아 그런 부분이 있기에 그런 사람을 대할 때면 불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겉으로 밝고 공감만 잘해주면 단순하게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자 나 또한 생각이 없고, 진정성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전혀 몰랐다. 내게 그런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살면서 거울이 되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오히려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별로인 모습들을 발견해내지 못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간혹 내 상황과 마음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섣불리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아니면 공감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이도 있었고. 그 ‘척’의 진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척’함으로써 자신이 마치 더 나은 사람처럼,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신중하지 않은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들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신중하지 못한 말과 행동은 어떻게든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니까. 나이가 들어서도 사고하는 힘을 기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천진난만하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천진난만과 생각이 없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자신이 그런 지조차 알지 못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까 매우 두렵다. 글을 쓰고, 일기를 쓰고, 매일 밤 오늘 하루가 어땠는가에 관해 떠올려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겉과 속이 잘 익은 과일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 빛 좋은 개살구 혹은 설 익은 과일이 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