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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Nov 26. 2023

양면성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오직 한 면만을 가진 인간을 보지 못했고,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오직 내가 경험한 것들로만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마치 경험한 것처럼 쓰거나 말하는 부류를 원체 좋아하지 않으므로.

나 또한 양면성이 꽤 두드러지는 인간 중 하나이다. 누군가는 선이라 부를 만한 면이 훨씬 두드러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와 상반되는 면이 훨씬 두드러지거나 혹은 아예 잠식되어 버린 자들도 적지 않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면이 언제나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밝은 사람이라고들 한다. 같이 있으면 웃음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어둡고 슬픈, 혹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지질한 모습이 떠오르며 종종 불편해질 때가 있다. 사회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하루 중 부정적인 생각이 70~80%를 이르는 내게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하기가 망설여진다. 오락가락하는 나의 생각들이 잠잠할 때는 오로지 잠을 잘 때뿐이다. 요가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들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내가 요가를, 명상을 하는 이유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잠재우기 위함인데, 다른 것들보다 확실히 효과는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행위가 끝나면 또다시 불행하고, 부정적이고, 기분 나쁘게 끈적이고 습하며 역한 냄새를 풍길 것만 같은 생각을 다시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나를 관찰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 애썼다.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나쁘다'라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애써 누르며, '이건 내 생각이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나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잖아.'라며 내 안의 다른 모습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회피하면 할수록 나는 더 그런 모습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억누르고 억누르다 폭발할 때면, 가장 많이 다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모든 물질과 자연에는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하듯, 인간 또한 마찬가지임에도 나는 오로지 '양'으로 여겨지는 것들에만 집착했다. 그것만이 내 모습이라 착각했고, 그 착각은 오만함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여겼던 철저한 무지는 삶을 불행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질하고 역겨운 생각을 하는 나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불행을 겪어왔던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대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나는 그릇된 자의식 속에서 가장 속이면 안 될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내게 진실할 때, 내 안에 마주한 불안과 두려움, 열등감,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변화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여전히 내 안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덩굴들이 알알이 얽혀 있다. 그것들이 서로 엉키고 설켜 덩치를 불리기 시작한 건, 내가 내 모습을 외면했을 때였다. 오로지 감추고, 억누르고, 회피할 때 그것들은 덩치를 불려 가며 더욱 크게 내 안에 자리 잡았고, 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는 일은 꽤 중요하다. 내가 평소에 어떤 생각의 흐름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주로 하는지 관찰하는 일은 하루뿐 아니라 내가 보낼 수많은 내일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음과 양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맛본다. 어느 하나에 치우쳐지지 않은 느낌. 삶은  그렇게 균형을 잡으며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 아마도 끝까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다가 의미 없이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 쓰는 이 글도 그다지 의미 있는 글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지닌 양면성에 관한 글을 짧게라도 꼭 한 번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것뿐, 이 글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이라도 해 본 사람들이 있을까? 복잡하고 심각한 미로 같은 내면을 가진 이가 있다면, 아마도 내 글을 조금은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작은 이해 한 조각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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