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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비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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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Jan 02. 2024

나비인간1. (단편소설)

지온은 언제나처럼 새벽 5시에 울리는 요란한 알람을 듣고 깼다. 날씨가 부쩍 추워져서인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10분 후, 알람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30분까지만 자야겠다.”

 그녀는 정확히 20분 뒤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이불을 박차고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예약해두었던 보일러가 꺼졌는지 바닥이 차가웠다. 으슬으슬함을 느낀 그녀는 양손으로 어깨를 감싼 후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나무 칫솔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갔지만, 지온은 플라스틱 칫솔이 여전히 그리웠다. 나무 특유의 텁텁함과 까칠함이 싫었다. 칫솔모는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치아를 닦는 그녀의 손놀림은 빠르고 거침이 없었고, 그런 그녀를 보며 항상 부모님께서는 “치아 닳겠다 닳겠어! 뭘 그렇게 세게 닦아 이를?” 하며 핀잔을 주시곤 했다.

 “우글우글. 퉤. 우글우글. 퉤. 퉤.”

 그녀는 이제 확실히 잠이 달아난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부어있는 눈을 만지작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커피포트 작동 버튼을 누른 후, 드리퍼 위에 여과지를 재빠르게 올린 그녀는 얼마 전 일본에서 사 온 원두를 그라인더에 쏟아부었다. 향긋한 원두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라인더는 위이이잉 하며 시끄럽게 굴었고, 금세 원두를 갈아냈다.

 “흠. 향기 너무 좋다.”

 뜨겁게 끓여진 물을 원두에 붓기 시작했다. 원두 위에는 빵 같은 거품이 보기 좋게 만들어졌다. 여과지가 커피를 내리는 사이, 그녀는 냉동실에 넣어 둔 식빵을 토스터에 던지듯 집어넣었고, 스피커로 재즈를 틀었다. 날씨에 걸맞은 부드럽고도 진한 재즈였다.

 휘뚜루마뚜루 완성된 아침이었으나 그녀는 꽤 만족스러웠다. 접시에는 땅콩버터 한 스푼과 갓 구운 식빵, 달걀 프라이 한쪽이 보기 좋게 담겨있었고 그 오른편에는 하얗게 김이 솟아오르는 드립 커피가 화려한 색감을 지닌 빈티지 잔에 담겨있었다.

 그녀는 반을 채 먹기도 전에 어제 읽다가 만 책을 식탁으로 가져왔다.

 “아. 맞다. 모닝 페이지도 써야지. 제발 한 번에 다 가져올 생각을 해. 지온아.”

 그녀는 책과 빨간색 양장으로 된 두꺼운 노트를 식탁에 펼쳐두었고, 검정 펜을 들고 빠르게 노트 위에 휘갈기듯 적어 내려갔다. 세 쪽의 분량을 다 채우고 나니 벌써 20분가량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커피는 더 이상 김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빨간색 양장 노트를 덮은 후, 그녀는 책을 30분 동안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남은 식빵을 욱여넣듯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좁은 방에 매트를 펴고, 온라인 요가 강의를 들었고, 명상을 했다. 그리고 플랫폼에 글 쓰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아침 시간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그녀였다. 


 8시 10분. 고요하고 적막한 사무실. 불을 밝히고 블라인드를 걷은 이는 지온이었다. 그녀는 벌써 7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높은 직책까지 따내게 되었다. 언제나 사무실 문을 여는 사람은 지온이었고,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익숙한 듯 메일함을 열어 메일을 확인한 후, 재빠르게 답장을 보냈고 회사용 스케줄러에 모든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전 9시. 사무실이 이내 꽉 찼다. 지온의 옆자리인 박 대리가 헐레벌떡하며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과장님. 헉헉. 좋은 아침입니다!”

 “박 대리. 그냥 빨리 오면 숨도 안 차고 좋지 않아? 사무실 문 열고 들어오면 얼마나 상쾌하고 좋은데.”

 “하하. 그러니까요. 과장님. 다음 주부터는 제가 일찍 와보도록…….”

 “그 말을 백번은 듣는 것 같은데?”

 지온은 그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는 머쓱해진 얼굴로 뒷머리를 긁어댔다.

 “그런데 과장님. 오늘도 미라클모닝인가? 그거 하신거에요?”

 “어. 그렇지.”

 “와. 진짜 대단하시다. 아니 5시에 어떻게 일어나시는 거예요? 뭐 뭐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오늘은 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일어나기가 힘들더라고. 30분 늦게 일어났어. 뭐 아침도 해 먹고,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고, 책 읽고 글 쓰고. 별 건 없어.”

 지온은 내심 뿌듯해진 말투로 말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앞에 있는 화면을 보며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네? 그 많은걸요? 저는 아침 먹는 시간도 아깝고 귀찮아서 자기 바쁜데. 진짜 대단하십니다. 이 과장님이야말로 갓생! 갓생 그 자체네요. 하하.”

 “나보다 갓생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박 대리. 이제 이야기 그만하고 일해야지.”

 “넵.”

 지온은 점심시간까지 빈틈없이 일했고, 그런 그녀를 두고 누군가는 독하다고도, 누군가는 대단하다고도 했다. 그녀는 아까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었으나, 그런 시간마저 사치라고 여겼다. 그런 습관 때문에 방광염으로 매년 고생을 하는 지온이었으나 약 먹고 버티고 약 먹고 버티고 하는 생활조차 그녀에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터였다.

 다들 점심을 간 후, 텅 빈 화장실에서 그녀는 방광에 가득 차다 못해 넘쳐 흐를듯한 오줌을 분수처럼 쏟아냈다. 그리고는 익숙한 찌릿함을 느꼈다.

 “아. 또 방광염이네. 오늘 병원 갈 시간 없는데. 하아.” 

 그녀는 변기에 앉은 채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메신저 창을 확인했다.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단톡방이 웬일인지 100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삼총사♥-

 유리 : 얘들아. 뭐해? 보고 싶다. 

 수은 : 유리. 오랜만! 요즘 뭐해?

 유리 : 어? 한수은. 왜 이렇게 답장이 빨라? 너 일하던 시간 아니었어?

 수은 : 빨라도 난리냐? ㅎㅎ 나 백수된 지 3개월 째. 백수가 달리 뭐 할 일이 있겠냐.

 유리 : 오! 대박! 드디어 거기 그만둔 거야? 너무 잘했어. 미친놈이랑 일한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 ㅠㅠ

 수은 : 나 거기 다니면서 걸어 다니는 병원이잖아. 면역력 떨어져서 안 아픈 데가 없어 지금. 유리 넌 어떻게 지내? 프사보니까 애기들 진짜 많이 컸네! 둘째 돌 지났어?

 유리 : 몸 아픈 데 다니느라 진짜 진짜 고생했어 ㅠㅠ 그럼. 지난 지가 언젠데. 나 직장 복귀했잖아. 애 둘 키우는 게 어지간한 돈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 남편 월급으로는 해결이 안 돼. 

수은 : 글치 글치. 나도 내 몸 한 몸 건사하는데도 월급으로 부족한데. 유리야. 너도 고생이 많다. 지온인 지금 한참 바쁘겠지?

 유리 : 그렇겠지. 우리 안 본 지 너무 오래됐다. 각자 살기 바쁘기도 하고. 거리상 너무 멀기도 하고. 삼총사 다 같이 5년 전에 강원도 여행 간 게 마지막 여행이었네. 이참에 우리도 여행갈래??!!!!


 그렇게 시작된 여행 이야기는 카톡이 수백 개가 되도록 이어졌고, 둘은 벌써 여행 갈 준비를 마친 듯했다. 지온의 대답 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온은 고민이 됐다. 

 ‘애들 보고 싶기는 한데. 흠. 여행가려면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 90프로는 마무리하고 가야 하는데.’

 지온은 그 외에도 가지각색의 이유로 여행 가기가 꺼려졌다. 그러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지온 : 음. 그럼 나만 정하면 되는 거지?

 유리 ; 응. 지온아. 언제가 편해? 얼른 날짜 정하고 나도 남편한테 이야기해줘야 해서!

 지온 : 나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일정 조율 최대한 해볼게. 이번 주까지 꼭 이야기 해 줄게.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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