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기 전, 나는 꽤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골목골목을 누비고, 새로운 동네의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미친 물가 때문에 휴일보다 일하는 날이 더 많아졌고
쇼핑을 참아내는 건 일상, 유행하는 간식거리를 먹는 것도 포기한 지 오래이다.
‘워킹’이 주가 되고 ‘홀리데이’는 가끔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작은 사치가 하나 있다.
바로, 가챠가챠
어쩌면, 그 작은 캡슐 안에 들어있는 건 장난감뿐만이 아니라
그날 하루의 행복, 기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작은 기대감일지도 모른다.
한 달에 한두 번,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역에서 전차를 기다리다가
내 두 눈과 발은 자연스럽게 가챠가챠 샵으로 향하곤 한다.
그리고 주섬주섬, 동전지갑을 꺼낸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300엔, 500엔이 그렇게 작은 돈은 아니지만
가챠는 나에게 작은 사치이자 행복이다.
'이건 꼭 뽑아야 해...' 하고 동전을 넣지만, 정작 내가 원한 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늘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게 제일 먼저 나오고, 마음속 1순위는 마지막까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는 가챠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마음에 쏙 드는 가챠를 보고도 ‘다음에 하지 뭐’ , '이번 달도 빠듯하니까' 라며 못 본 척 넘겨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 스치듯 들었던 한국 관광객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지나간 가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 이후로 나는, 마음에 드는 가챠를 만나면 반드시 뽑는다.
가끔은 운이 좋아 원하는 게 나올 때도 있고,
대부분은 ‘이게 뭐지…’ 싶은 걸 손에 쥐고 한숨을 쉰다.
가방, 우산, 열쇠, 서랍 위까지
그렇게 내가 열심히 뽑은 가챠는 내 손이 닿는 어디든 달려있다.
사실, 원하던 가챠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요즘은 가챠를 하며 가지게 된 작은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기!
이 친구는 이런 표정을 하고 있네?
색이 더 쨍해서 예쁘네?
같은 시리즈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런 매력이 있잖아?
그렇게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생각보다 귀엽네, 못생겨서 정감 가네. 하고 마음이 움직인다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손에 들어와 주었으니까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여행처럼 설렐 줄 알았고, 일도 적당히 하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고물가에 하루하루를 계산하며 살고,
여행보다 일이 더 많은, 말 그대로 '워킹'이 중심인 나날이었다.
마치 가챠처럼. 내가 바랐던 워킹홀리데이의 캡슐을 돌렸지만,
나와버린 건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좋아해 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처음엔 실망스럽게만 느껴졌던 가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이만의 매력이 있고,
원치 않았던 것도, 어느 순간 보면 정이 들어 귀엽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챠는 매 순간, 나에게 애정 훈련을 시킨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연습.
나에게 가챠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어느새 감정의 훈련이자, 작지만 분명한 성장의 기록이 되었다.
운이라고 읽고, 정이라고 쓰는 작은 캡슐 하나.
마음에 쏙 드는 순간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온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가챠를 돌리며 이 낯설고 조금은 거친 일본살이 안에서도
나만의 작은 사치이자, 따뜻함을 수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