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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y 19. 2024

아픔으로 구슬을 빚어주는 묘약

실패로 보배를 만들어 드립니다.  

얼마 전에 쓴 "아픔도 구슬이다"라는 글을 읽은 옛 직장 후배가 아픔을 구슬로 만드는 마음가짐이나 태도 말고, 직장인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직장에서의 아픔이라면, 그리고 그 아픔이 사람 관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 아픔은 많은 경우 업무상의 실수나 실패일 것이다. 그걸 구슬로 바꾸는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사람마다 잘 듣는 약이 따로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효과 좋은 약이 하나 있기는 하다. 


이 약은 실패가 없다. 제대로 먹기만 하면 삶의 모든 아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직장에서의 많은 아픔은 구슬로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장에서의 만아픔통치약' 정도의 이름은 붙일 수 있겠다. 


그런데,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이 약은 좀 쓰다. 다만 처음에는 쓴 걸 잘 모르고 살짝 단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잘 먹는다. 하지만, 먹을 때마나 조금씩 점점 더 써 지는 약이고, 그래서 처음에는 옳다꾸나 하고 먹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먹기 싫어지는 약이다. 그러다보니, 직장에서도 새내기들은 종종 먹는데 관리자들은 잘 먹지 않는다. 


이 약의 이름은 피드백이다.


그 중에서도 남이 하는 피드백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하는 자가 피드백이 바로 '직장에서의 만아픔통치약'이 된다. 


나는 피드백은 원래 생물학 계통에서 생긴 말이라고 배웠는데, 공대 분들은 공학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니 어느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부분의 생물은 몸 안에 이미 피드백 기능을 가지고 있다. 


피드백은 어떤 일의 출력물이 그 입력물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당 (Glucose)을 먹으면 당이 분해되어 에너지가 생기는데, 이 과정에서 당을 분해되어 생기는 물질이 많아지면, 이 물질이 해당 과정을 방해해서 당이 더 이상 분해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자기계발 분야에는 살짝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데, '의도한 것과 실제 결과를 비교해서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정도로 해석된다.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한 방법으로 피드백이 사용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저 과거를 회고하는 건 피드백이 아니다. 결과물로 입력물을 통제하는 것이 피드백이니, 다음에 같은 업무가 주어 졌을 때 나의 입력물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비로소 피드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효과적인 피드백은 크게 세 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내가 성취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와 실제로 얻어진 것이 무엇인지 비교하고, 그러한 차이가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그러한 차이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요즘은 피드백이라는 말 대신 After Action Report 혹은 After Action Review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생명이 창조된 때부터 사용된 이 '피드백'이라는 방법에 새로운 이름이 붙는다는 건, 그 만큼 피드백에 대한 관심이 크고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3621


그런데, 직장에서의 아픔이 대부분 실수나 실패의 경험라면 사실 피드백이 필요 없는 상황, 실수나 실패가 없는 상황이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변호사 1년차에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특허청에 제출할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만, 당연히 실수가 있다. 1년차니 어쩔 수 없다. 놀라운 것은 내 실수를 찾아내는 파트너 변호사들의 능력이다. 눈에 딱 보이는 실수는 거의 없으니, 대부분 내용을 이해해야 찾아 낼 수 있는 실수들인데, 슬쩍 보고 다 짚어낸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거냐... 라고 물어보면 다들 똑 같은 대답을 한다. 하다보면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후배가 생기고, 3년 쯤 지나니, 나도 1년차들이 어디서 어떤 실수를 할 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무협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기연에 의해 얻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내 실수를 내가 고쳐가는 경험이 쌓일 때에 습득하게 되는 지혜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다른 변호사의 실수를 예측하고 짚어낼 수 없는 고참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고, 신참이 해야 할 실수를 고참이 되어서 저질렀을 것이다. 


내가 한 실수와 나의 실패가 나의 지혜가 되게 하고 나의 성과가 되게 한다 - 여기에 피드백의 가치가 있다. 


직장인에게 피드백은 바둑으로 따지자면 복기다. 한 때 세상을 호령했던 바둑기사 이창호는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차이가 있다면 직장에서는 대부분 패배한 업무만 복기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거면 일단 충분하다. 


그거면 직장에서의 아픔은 구슬이 된다. 내 경험상 여기에는 실패가 없다. 그런 면에서 피드백은 묘약이다.


뒤돌아 볼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앞만 보고 달려야지 뒤를 보는 건 어리석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피드백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말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당분이 다 피드백의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당분 중에도 피드백이 작용하지 않는 당분이 있어서, 이런 당분을 먹으면 먹는 족족 분해가 되어 에너지가 된다. 아무리 대사 산물이 많이 쌓여도 당분 분해가 멈추지 않는데, 에너지가 계속 나오니 얼핏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에너지 대사가 불균형해지고, 결국 그런 대사를 하는 세포 자체가 손상된다. 그것이 당분을 섭취할 때 피드백을 거치는 당분을 섭취해야 하는 이유이고, 아픔이 된 업무를 돌아 봐야 하는 이유다. 뒤돌아보는 것도 업무다. 어쩌면 뒤돌아 보는 것이야 말로 모든 업무의 마무리 작업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피드백은 점점 써 진다. 그리고 피드백은 원천적으로 바둑 복기보다 어렵다. 


복기야 조훈현도 하고, 이창호도 하고, 이세돌도 하고, 신진서도 하니, 누구나 그러려니, 해야 하려니, 하고 한다. 하지만, 직장인 중에 자가 피드백 하는 사람이 드물고, 관리자 급에서는 더 찾아보기 어려우니, 실행이 더 어렵다. 열심히 후배들에게 피드백은 주지만 조금만 직급이 올라도 막상 자가 피드백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저 그럴 때는 조훈현을 기억하고, 이창호를 기억하고, 이세돌을 기억하고, 신진서를 기억할 밖에. 그들도 바둑을 복기하는데, 내 업무에 피드백 할 것이 없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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