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비비라는 가수가 부른 밤양갱이라는 노래의 인기가 높다. 유튜브를 보아도 이 노래를 배경으로 쓰는 reels가 많고, 따라 부르는 영상도 부지기수다.
노래 내용은 간단하다. 비비 전 남친은 비비에게 "너는 바라는 게 너무 많다"고 하고, 비비는 "내가 바랐던 것은 그저 달디단 밤양갱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비비의 입장을 들었으니, 이제는 비비 전 남친의 입장을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비비 전 남친은 억울하단다.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나는 분명히 밤양갱을 줬다구요!!!
혹시, 둘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거다. 비비 전 남친은 비비에게 밤양갱을 주었으나, 비비는 밤양갱을 받지 못했을 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양갱의 한자 표기는 羊羹인데, 이걸 한자 의미대로 풀어보면 ‘양고깃국’이라는 뜻이다. 이 양갱이라는 단어는 중국의 송서라는 책에 등장하는데, 정말로 양고기를 넣은 국 요리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 요리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양고기가 빠지게 된다.
일본의 한 과자 회사가 정리한 ’양갱의 역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유학한 일본 승려들이 중국의 양갱을 아침과 저녁 식사 사이에 먹는 간식의 하나로 일본에 들여왔다고 한다. 하지만 승려는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양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팥 등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 중국의 양고깃국과 비슷하게 보이는 국을 만들었다.
그렇게 국물 요리로 일본에 전파된 양갱은 초기엔 국물이 많았으나 점점 국과 건더기가 분리되었고, 이후 서양에서 설탕이 전해지면서 건더기에 설탕을 넣은 달콤한 양갱이 생겨났다. 다도가 유행했던 에도시대 양갱은 차와 함께 즐기는 다식으로 먹다가 마침내 밤, 팥, 녹두 등 앙금에 설탕과 한천을 넣어 굳힌 과자로 정착됐다.
그러니, 이제 상황이 이해된다. 비비는 과자 양갱을 원했고, 비비 전 남친은 양고깃국 양갱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건 비비의 잘못도, 비비 전 남친의 잘못도 아니다. 이건 그저 우리가 매일 보는 잘못된 소통의 한 예일 뿐이다. 남여가 소통 방식이 달라 문제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로 해결이 안 되는 숙제다.
하지만, 회사에서라면 문제가 다르다. 잘못된 소통으로 인한 문제는 최소한 없어야 하는 곳이 회사다.
한국의 회사에서 직장인이 상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서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비비 전 남친과 비비 사이에서는 잘잘못을 따지기 어렵지만, 직장에서라면 잘잘못을 따져볼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할 당시에는 윗 사람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자지 못해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건 아랫 사람의 문제였다. 윗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도 아랫 사람의 업무 영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일하던 캐나다 로펌에서는 아랫 사람이 알아듣도록 지시하는 것까지가 윗 사람의 역할로 인식되었다. 그러다보니, 잘 지시하는 것이 윗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된다.
이제는 한국도 바뀌었는지, 유튜브는 물론이고 여러 단체의 교육 과정에서 윗 사람과 아랫사람이 잘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가르친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88
재미 있는 것은, 강의를 듣다보면 아랫 사람에게 잘 지시하기 위한 요령이 요즘 유행하는 prompt engineering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ChatGPT와 같은 인공 지능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promt engineering)이 아랫 사람에게 일을 잘 시키는 방법과 일맥 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것 처럼 아랫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윗 사람들은 "불필요한 과정/내용이 너무 많다" 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 만큰 아랫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니 나쁜 생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을 불필요하게 느끼다보니 아랫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한 맥락과 상사가 원하는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상사는 과자 양갱을 요청하고, 아랫 사람은 양고깃국 양갱을 가져오는 상황이 반복된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 비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비비는 "내가 광고 모델로 나온 달디 단 밤양갱"을 원한다고 말했어야 하고, 또 비비 전 남친은 "네가 원하는 것이 정말 양고깃국"인지 물었어야 한다. 그랬다면 그들은 지금도,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함께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윗 사람의 잘못이다.
ChatGPT와 소통하는 연습은 하면서, 왜 아랫 사람과 소통하는 연습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비비의 "밤양갱"은 그래서 그저 남여간의 슬픈 헤어짐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있는 사람들과, 그렇게 Happily Ever After 하고 싶다면, 그리고 "내가 분명 밤양갱을 줬잖아!!"라고 항변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잘 소통하는 연습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자기계발에 대한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