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Jun 24. 2024

'이것' 없이 실패하면 안 된다.

모든 실패가 성공으로 이끄는 실패는 아니다

한국에서 다국적 기업에서 일을 할 때는 경영진들이 쉽게 말하던 것이 있었다 -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실패해도 좋으니 시도하라, 시도하지 않으니 실패도 없는 것이다.... 등등. 


경영의 구루라 불리는 이들이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기업 문화가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고, 새로운 시도가 없는 회사는 결국 도태된다는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회사 경영진들이 정말 그 의견에 동의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때는 나도 이렇게 생각했다. 


성공의 바로 전 단계는 실패다. 실패를 무서워하지 말자.

 

그런데, 캐나다에서 로펌에 들어가 보니, 그건 택도 없는 말이었다. Fortune 500  기업 간의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변호사의 실패는 곧 패소이고, 고객이 보아야 하는 손해는 천문학적이다. 실제로 규모가 좀 되는 회사들도 지적 재산권 소송에서 패하고 합병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실패하는 로펌이 고객에게 선택받을 여지는 없다. 언감생심 실패는 물론이고 실수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든지,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효과가 없는 1만가지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와 같은 멋있는 말을 남겼지만, 사실 그건 그 분야에 경쟁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월급쟁이 생활과 개인 사업자 생활을 다 해 보니,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실패는 생존과 직결되는 경우도 많아 실패를 용납하는 문화를 만들기는 어렵고, 특히 흔히 말하는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어느 경우이든 실패가 없을 수는 없으니, 그 실패를 제대로 '대접'해 주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실패한 접착제에서 포스트잇이 나오고, 실패한 자양강장제에서 코카콜라가 탄생한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3288?utm_source=kakaotalk&utm_medium=bunker&utm_campaign=%EA%B2%BD%EC%98%81%EB%B2%99%EC%BB%A4_3288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가 내게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얼마 전에 고객 한 분의 동업 계약 해지를 도와드렸다. 동업을 하기로 하고 함께 사업장을 연 동업자가 갑자기 가게 안에서 두 개의 사업장을 따로 운영하자고 했더란다. 서운했지만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는데, 어느 날부터 본인 구글 리뷰에 나쁜 댓글이 달리더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고객이 없어서 고민만 하던 차에 우연히 동업자와 동업자 고객 사이의 연락 내용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고객의 아이디가 악플을 단 아이디였다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 고객을 그 업장에서 내보내기 위한 동업자의 꼼수였다. 


더 이상 같은 매장에서 사업을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양 측 모두 변호사를 고용해서 동업 계약을 해지했고, 오랜 줄다리기 끝에 상대방이 업장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면서도 계약서에 여러가지 꼼수를 부리려 했는데 (상대방 변호사는 그런 식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으니, 그건 그 동업자의 수였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행히 잘 막았다. 


그런데, 그 거래가 마무리되고 나서 갑자기 내 구글 리뷰에 악플이 연달아 몇 개 달렸다. 우리 사무실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해서 종이만 쓴다는 둥,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유로 별점 테러가 가해졌다. 구글에 신고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악플 중 한 아이디가 내 고객에게 악플을 달았던 그 아이디였다는 것을. 아마도, 원하는 방식으로 동업을 깨지 못한 상대방이 악감정을 가지고 지인을 시켜 내게 악플을 단 것 같았다. 억울했으나, 달리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꼭 나쁜 일은 아니었다. 좋은 평가를 해 주신 분들이 많아서, 그 여러 악플에도 불구하고 내 구글 평점은 변동이 없었다. 오히려 평가자 수만 더 늘어나 보였다. 게다가 그 악플들은 새로운 좋은 평가에 묻혀 아래로 내려갔으니, 마케팅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닥 나쁠 것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행실이 나쁜 상대를 만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예를 들어, 동업 해지 계약서에 쌍방 모두 상대방 변호사에 대한 악의적 평가를 퍼뜨리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는 등)은 어쩌면 실패일지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일면 좋은 효과가 생긴 것은 충분한 양의 5점짜리 별점이라는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프라도 없이 실패를 장려하고 용인해서는 안 된다. '성공하려는 시도와 함께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한 실패를 용인하는 것'과 '예정된 실패를 방치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골도 넣어 본 놈이 넣는다고 하지 않는가. 실패할 줄 알면서 실패하면, 그 다음에도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는 실패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진 것이 칠판이면 잘 못 써도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만, 내가 가진 것이 석판이면 한 자, 한 자를 제대로 써야 한다. 그래서 나의 인프라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인프라 없이는, 실패를 용인하는 마음가짐이나 문화를 장려하면 안 된다. 다만, 나의 인프라는 많은 경우 나의 생각보다는 더 크더라는, 경험에 기인한 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