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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ug 12. 2024

한국 아이들과 캐나다 아이들은 다른 농도의 시간을 산다

농도는 짙을 때가 아니라 적당할 때 향이 난다

얼마 전에 헤이즐넛 향이 좋다는, 캐나다에서 로스팅하는 커피 가루를 주문했다. 모든 커피가 다 그렇지만, 봉지를 따고 바로 맡는 커피 향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 커피도 예외는 아니어서 봉지를 열어보니 무척 좋은 에이즐넛 향이 났고, 커피를 배달 받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난 기대감에 차서 모닝 커피를 내렸다. 전에 마시던 커피와 같은 분량으로 조절해서 커피를 내렸다. 


그런데,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거다. 커피 냄새는 좀 나지만 특이할 것은 없었고, 게다가 헤이즐넛 향은 아니었다. 분명 평가는 너무 좋았는데 말이다. 아쉽지만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서 그런가...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날 아침은 갑자기 예고 없이 한국에서 전화가 쏟아지고, 아침부터 약속없이 고객들이 방문하시고, 또 여러 업무가 얽히는 통에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아침에 내린 커피 한 잔이 점심 식사 이후에도 반 잔 이상 남아있었다. 


커피는 내리고 15분 안에 즐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커피에 까다롭지는 않은 터라 나는 컵에 물을 더 채워서 한 잔을 만들고, 전자 렌지에 1분간 돌려 뜨겁게 만든 후에, 다시 마셨다. 


그런데, 헤이즐넛향이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이렇게 기분 좋은 헤이즐넛 향이라니. 아까 헤이즐넛 향이 나지 않은 건 내가 커피를 너무 진하게 내려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커피를 내릴 때와는 다른 농도로 맞춰야 그 향이 나는 것이었다. 


커피 농도가 짙다고 해서 헤이즐넛 향이 더 풍부해 지는 것이 아니라, 농도가 적당해야 그 커피가 가진 향이 제대로 나는 것이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이태원 클라쓰"라는 웹툰이 있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기고 성공하는, 어쩌면 뻔한 스토리를 가진 만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군데군데에 마음에 울림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시간의 농도"에 대한 말이었다. 


주인공인 박새로이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서 마침내 자신의 가게를 연 것을 본 박새로이의 교도소 동기가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다.


"분명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와 나의 시간은 그 농도가 너무나도 달랐다." 


매일매일 농도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당위성은, 한국에서 교육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문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시간의 농도가 짙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캐나다에 와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느낀 것이지만, 캐나다와 한국은 그 시간의 평균 농도가 다르다. 캐나다 시간의 평균 농도를 100으로 본다면 한국 시간의 평균 농도는 150쯤 되는 것 같다. 시간에만 그런 것일까. 한국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짙은 농도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눈이 높아지고, 그렇게 스펙이 높아지고, 스펙이 높아지니 다시 시간의 농도를 짙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어쩌면 이전 세대의 한인 1세분들이 언어도 다른 캐나다 땅에서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짙은 시간의 농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농도 100의 시간을 살 때 150의 농도로 살았으니, 정착이 더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짙은 농도로만 달리다 보면 내게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1.5세나 2세를 보고 알게 된다. 


캐나다는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향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의 향을 그닥 부러워하지 않는다. 메이플 향은 메이플 향을 내고 살고, 헤이즐넛 향은 헤이즐넛 향을 내고 산다. 코코넛 향이 더 비싸게 팔리면 좀 부러워 하지만, 그 뿐이다. 내 향은 헤이즐넛이니, 헤이즐넛 향을 내고 살기 위해 필요한 농도 조건을 찾아야 한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 


언젠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맛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커피 맛을 일정하게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로스팅을 과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커피를 태울 듯이 볶고 나면, 얼추 다 비슷한 쓴 맛이 난다는 것이었다. 맛을 통일시키는 방편으로 과하게 볶는다는 것이었다. 


1세인 나의 눈에, 캐나다에서 가르치는 시간의 농도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만하면 됐다"는 일종의 적당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다분한 교육이다. 


하지만, 그저 농도만 올리다보면, 다 똑같은 쓴 맛 밖에는 낼 수 없다는 걸, 향은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 


내 아이가 헤이즐넛 향을 가졌다면, 코코넛 향을 내는 데에 필요한 농도를 강요하기 보다는 헤이즐넛 향을 내는 데에 가장 적당한 농도를 같이 찾아 주는 것이 캐나다 교육이라니, 거기에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향과 관계없는 짙은 맛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내 본연의 향기가 있는 삶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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