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보다 더 버는 아내 (1)

나는 비교적 부자다. 남편에 비해서.

by IT 대기업 이팀장

제목이 너무 후킹했나? 하지만 양성평등시대인 2025년에는 나와 같은 케이스도 정말 많을 것 같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했고 3월에 공채를 여는 제1금융권 중 하나에서 나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지금의 남편은 나와 같은 회사의 입사동기 중 한 명이였고 대부분의 사내연애가 그렇듯이 회사에서 겪은 힘듦과 고충을 내 이야기를 이해해주는 (그리고 나와 업무적으로 겹치지 않는. 이것이 가장 중요함) 동기들에게 얘기하다가 역시 내 말 알아들어 주는건 이 사람밖에 없다는 큰 착각에 빠져 내가 그 회사를 퇴사할 시기쯔음 연인이 되었다.


첫 회사 퇴사 이후 이직한 스타트업 A는 내가 인생에서 만난 몇 안되는 큰 행운 중 하나였다. 그 달려오는 행운의 머리채를 꽉 잡은 덕에, 그 회사를 퇴사하는 시기 즈음에는 입사했던 당시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연봉을 가지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신입사원 치고 기존 연봉도 꽤 높았지만 유니콘이 되어버린 IT 스타트업에서 주는 식대 무한의 법카와 자유롭게 사용하는 휴가, 그리고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연봉시스템은 나를 과거의 내가 동경하던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나의 기준으로 세운 부자는 굉장히 별볼일 없는 부자라는 것. 생필품을 구매하는 장을 볼 때 가격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거나. 가끔 후배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면서 그에 따른 고마움을 바라지 않게 된 것. 옛날에는 손 떨려서 눈치보면서 샀던 라로슈포제나 SK2, 갈색병 같은 화장품들을 나의 데일리 필수재 안에 카운트하기 시작한 것. 길가다 러쉬가 보이면 하나 산다. 허리를 위해 12년 보증이 되는 걸 확인한 후 손을 떨며 허먼밀러를 사서 쓴다. 2년이 지나면 아이폰을 바꿀까 고민한다. 이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연봉 얘기만 했다. 주식 얘기를 할 시간.


나는 A 회사를 퇴사하기 이전에 스톡옵션으로 받은 회사 주식을 대량 팔아 서울의 작은 아파트에 갭투자를 했고, 마침내 그 투자는 성공해서 아이가 없는 부부라면 굳이 노후를 위해 별도로 저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산으로 불어났다. 이런 말이 굉장한 위화감을 가져오는 시대라는것을 안다. 그러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 건조하게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겠다.


나는 이 과정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하여 소득세를 내고, 또 세금을 내고, 또 세금을 내고, 또 세금을 내는 일련의 상황들을 오롯이 외롭게 힘들게 혼자서 마주해야 했고, 어떻게든 사다리를 걷어차서 재직중인 임직원 주주들을 거지로 만들고자 하는 창업자의 악랄함 때문에 자주 혼자 눈물 흘렸다. 눈 앞에서 나에게 부여된 스톡옵션이 HR을 통해 갈취된 적도 있고 지금까지 돌려받지 못했다.


남편이 옆에서 코를 골고 자는 동안 혼자서 운 적도 많고, 우는게 들킬까봐 아파트 놀이터 그네에 앉아 별을 보면서 도대체 남은 인생은 누구에게 기대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당시 세금 문제는 어째저째 잘 해결되었고, 지금은 쳐다보면 든든한 작은 아파트가 하나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의 기여도는 거의 전혀 없고 나 혼자서 모든 법적 세무적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에 어떤 집을 구매할건지에 대한 고민, 평일 시간을 할애해서 하는 사전답사, 그리고 계약과 네고 과정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남편의 기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아, 계약할 때 같이 가서 옆에 앉아있어 준 정도는 있겠다.


결혼 전후로 꽤 오랜 시간동안 가정의 유지와 운영에 필요했던 대부분의 돈은 내가 밖에서 벌어왔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녔다. 그 회사 좋지, 나도 다녀봤으니까. 그런데 남편이 한 회사에서 과장을 다는 동안 나는 남편보다 어린 나이에 일찍이 팀장이 되고, 엄마의 마음으로 보살피는 수십명의 팀원들이 생기고, 연봉도 남편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혼자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기 전,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다.

여기부터 우리의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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