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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 박하 Apr 01. 2024

바그너의 지크프리트

사랑으로 두려움을 배운 영웅

2024 Staatsoper Berlin RING-Zyklus II

해 떴을 때 들어가서 5시간 반 만에 밤 중에 나왔다.

지크프리트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안드레아스 샤거(Andreas Schager)는 이전보다 배도 나오고 흰머리도 늘고 톤도 다소 약해 보였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충만했다. 파란색 아디다스 져지를 입고 미메와 파프너를 처치하고 브룬힐데를 잠에서 깨운 영웅 지크프리트의 노래와 연기는 긴 대사를 외우고 노래해야 하는 기억력과 가창력 플러스 축구에서 전후반부를 쉬지 않고 뛴 선수의 체력과 풀코스를 완주한 마라토너에 버금가는 지구력도 필요하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압도해야 하는데 진심 저러다 죽을 거 같다 싶을 정도의 고강도 씬이 많다.

가만 서서 불러도 힘들 노래를 껌을 씹고 담배를 피우고 집기를 부셔가며 삐딱하게 누워서도 거침없이 불러대는 샤거에게 관객들은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라인골드에서 반지의 탄생 배경을 알려주고 발퀴레에서 보탄과 사랑하는 딸 브룬힐데를 중심으로 신들의 세계를 지키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 지크프리드에서 뵐중족의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영웅의 성장드라마가 펼쳐진다. 링 시리즈는 바그너 특유의 무한 선율과 아름다운 유도동기(Leitmotiv),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향연으로 오페라 그 이상의 작품이다.

리벨룽의 반지는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신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의 윤리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보탄의 쌍둥이 남매 지그문트와 지글란데가 사랑에 빠지는 근친상간이다. 신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해서 그 커플에 응징과 용서가 갈린다. 이후 그 둘의 아들 지크프리트는 고모이자 이모인 브룬힐데와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스포이지만 지크프리트도 나중엔 죽는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룻이 딸 둘과 동침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후손은 모압과 암몬자손들로 유대를 괴롭히는 악의 족속이 된다. 고대 이집트나 잉카제국도 그렇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 스페인의 마르가리타 공주가 흉하게 변하는 것도 다 근친의 저주다. 신화이고 작품이니 이해하자 하면서도 고모와 조카사이는 몰입이 쉽지 않다.

난쟁이 알베리히의 동생 미메는 절대반지를 차지할 요량으로 지글란데가 낳은 지크프리트를 아기 때부터 키워왔다. 1막부터 자기를 키워 준 미메에게 지크프리트는 너무나 못되게 군다. 키워 준 은혜는 고사하고 거의 폭력배 수준으로 미메를 괴롭힌다. 나중에 친아빠가 아닌 걸 알고 패드립을 치기도 한다. 베르디의 일트로바토레(Il Trovatore)에서 집시 아주체나(Azucena)가 복수를 위해 만리코(Manrico)를 키우지만 적어도 이 둘은 모자간의 정은 있었다.


 

지크프리트가 그럼에도 영웅인 것은 두려움을 모르고 물욕에서 자유하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

마치 송원평의 소설 '아몬드'에서 남의 감정에 공감 불능인 윤재와 상처받은 괴물 아이 곤이가 떠올랐다. 지크프리트는 윤재와 곤이를 합해 놓은 인간 같다. 그는 용감한 게 아니라 윤재처럼 그저 무서움을 못 느끼는 아이였고, 곤이처럼 사랑에 목마른 영웅이 아닌 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0.03.2024

SIEGFRIED

Zweiter Tag des Bühnenfestspiels

DER RING DES NIBELUNGEN (1876)

TEXT UND MUSIK VON

Richard Wagner


BESETZUNG

MUSIKALISCHE LEITUNG: Philippe Jordan

INSZENIERUNG, BÜHNE: Dmitri Tcherniakov

KOSTÜME: Elena Zaytseva

LICHT: Gleb Filshtinsky

VIDEO: Alexey Poluboyarinov


SIEGFRIED: Andreas Schager

MIME: Stephan Rügamer

DER WANDERER: Tomasz Konieczny

ALBERICH: Johannes Martin Kränzle

FAFNER: Peter Rose

ERDA: Anna Kissjudit

BRÜNNHILDE: Anja Kampe

STIMME DES WALDVOGELS:Victoria Randem

STAATSKAPELLE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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