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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 박하 Apr 08. 2024

타바레스 스트라챤의 최초의 만찬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유다가 아닌 자가 있나

 그림 보러 11년 만에 런던에 다시 들렀다. 전에는 심리적으로 최악의 컨디션으로 와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 해 2월의 우중충한 겨울 날씨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날 위로해 준 건 미술관의 그림들도 아니고 오페라의 유령 같은  멋진 뮤지컬도 아닌 하이드파크의 변함없는 초록이었다.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닌 고통의 순간들이 새삼스럽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은  지금 너무 슬퍼할 일도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라는 겸손의 가르침을  준다. 나이가 들고 그때보다 더한 인생의 고비를 넘기고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봄의 초입에 다시 오니 흩날리는 꽃잎들과 넘쳐나는 명화들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오페라까지 모두 감사하기만 하다.


2024년 4월 오늘의 런던은 가끔 해가 나지만 바람이 몹시 불었다.  가지고 온 캐시미어 모자를 어제 테이트모던에서 잃어버려서 더 한기가 느껴진다. 아쉬운 대로 봄스카프를 여미고 걸었다.  마침 영국왕립미술원 정문을 지나가다 안뜰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게 감지되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자석에 이끌리듯 건물 마당으로 하나 둘 걸어 들어온다.


오래된 회색빛 건물과 대조되어 가로로 긴 테이블에 검정과 황금의 대비가 무척 강렬하다. 인물들의 다양한 몸짓과 드라마틱한 연출은 보는 이들에게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Tavares Strachan’s “The First Supper”


바하마 출신 예술가 타바레스 스트라챤(Tavares Strachan,b. 1979, Nassau, Bahamas)이 제작한 '최초의 만찬'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예술과 식민주의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4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24년 2월 올해 영국왕립미술원에 공개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재해석한 기념비적인 청동 조각상들은 흑인 활동가, 예술가, 과학자 및 기타 저명한 인물로 대체한다. 이들은 노예제 폐지론자 Harriet Tubman, 동성애 권리 운동가 Marsha P. Johnson, 미국 최초의 흑인 국회의원 Shirley Chisholm, 시인 Derek Alton 경, 가스펠 가수이자 퀴어 흑인 로큰롤의 대모인 Rosetta Tharpe 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외에도 브라질 저항군 Zumbi Dos Palmares, 간호사 Mary Seacole, 우주 비행사 Robert Henry Lawrence 및 탐험가 Matthew Henson이 있다. 작품은 새로운 식사 라인업을 통해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을 탐구한다. 이들은 결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로 억압 유지의 권력 구조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1세가 예수를 대신하고 스트라칸 자신이 유다로 분한다. 작가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지요. 유다가 아닌 사람이 누구죠?”라고 말했다.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들은 아프리카 쌀, 빵나무 열매(breadfruit), 메기(catfish), 닭고기, 코코아, 커스터드 사과(custard apple), 가시여지(Soursop)등이다. 이들은  카리브해에서 주로 소비되며 계약 노예의 역사와 아프리카 원주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가는 메시아를 배반하기보다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과 관련된 구성에서 소외된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역사의 현상을 비튼다. 특별 전시 작품 뒤에는 RA 창립 회장이자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 경(Sir Joshua Reynolds)의 동상이 평소 자리에 서 있다. 수세기 동안 이러한 종류의 공공 기념물이 거의 전적으로 백인 남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p.s. 이 작품은 왕립미술원 특별전시 기간인 2024년 2월3일부터  4월28일까지만 전시된다.



The full list of figures is as follows:

Tavares Strachan (b. 1979)

Sister Rosetta Tharpe (1915-1973)

Harriet Tubman (1822-1913)

Shirley Chisholm (1924-2005)

Marcus Garvey (1887-1940)

Zumbi dos Palmares (1655-1695)

Haile Selassie (1892-1975)

Mary Seacole (1805-1881)

Matthew Henson (1866-1955)

Marsha P. Johnson (1945-1992)

King Tubby (1941-1989)

Derek Walcott (1930-2017)

Robert Henry Lawrence (1935-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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