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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 박하 Apr 19. 2024

비제의 카르멘 in 런던로얄오페라하우스

이별도 사랑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Bizet’s Carmen

이번 부활절 런던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카르멘에 돈호세 역을 맡은 표트르 베찰라(Piotr Beczała)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메트로 오페라 온라인으로만 접하다 실제 무대에서 보니 기대한 것보다 더 훌륭했다. 흔히 말하는 공기반소리반에 무척이나 맑고 청아한 목소리였다. 극장 안에서 공명하는 그의 음색은 무척이나 고왔다. 화려하거나 강렬하다기보다 듣기에 매우 편안했다. 역시나 명반보다 실제 공연이 낫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스타 테너로서 차별화된 자신감과 스케일이 돋보였다.


그는 나쁜 여자 카르멘에게 반해 군인이란 직업도 버리고 약혼녀와 엄마의 기대마저 뿌리쳤건만 변심한 그녀를 놓아주지 못하는 찌질남 돈 호세의 역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카르멘 역은 아크메치나(Aigul Akhmetshina) 러시아  메조소프라노가 맡았다. 언듯 보면 안나 네트렙코와 외모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러시아 출신인 것과 일단 훤칠한 비쥬얼로 주인공 역할로 시각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거기다 실력도 좋고 연기도 괜찮다. 실제로도 스물일곱 인 그녀는 카르멘과 비슷한 연배로 젊고 열정이 넘쳤다.



무대는 단순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한 개의 트인 건물이 등장하고 씬마다 용도가 바뀌었다. 카르멘을 다른 프로덕션에서도 봤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카르멘 등장할 때 보통 치마를 많이 입히는데 이번 로열오페라에서는 칼하트(Carhartt) 느낌의 작업복으로 등장했다. 더 현실감 있고 당당한 캐릭터를 살려주는데 주효했다. 첫 씬에서 보통 군인들이 여성들에 집단 추행하는 듯한 연출을 많이 하는데 구시대적이고 불편하다. 이번 프로덕션은 그런 수위조절은 좋은데 카르멘과 돈호세의 불꽃 튀는 애정접점이 약해 약간 아쉬웠다.



뿔테안경에 모범생 스타일의 착하지만 사랑에는 운이 없는 순정녀, 돈 호세의 약혼녀(Micaëla)로 분한 올가 쿨친스카(Olga Kulchynska)의 섬세하고 호소력 있는 연기와 노래가 좋았다. 커튼콜 박수를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  

어쩌면 카르멘에서 주인공보다 더 존재감 있는 인물이 카르멘의 새 연인 투우사 에스카밀로 일 것이다. 코스타스 스모리기나스(Kostas Smoriginas)박력있고 매력적인 아리아로 장 내를 장악하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오페라가 진행되는 내내 어느 장면에서건 한편에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등장한다. 대사 하나 없이 존재감을 내뿜는 인물은 돈 호세의 엄마다. 원래 대본에는 없는 인물이다. 카르멘의 죽음과 사랑의 파국을 예고한다. 우리 삶 가까이에 늘 죽음이 있다는 메멘토모리의 역할을 한다.



카르멘을 사랑한 댓가는 혹독했다. 돈 호세는 군인이란 직업도 버렸고, 약혼녀를 버렸고,  자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기대마저 외면하는 불효를 저질렀다. 치명적인 카르멘은 한 사람에 대한 순정파가 아닌 새로운 사랑을 찾아 훨훨 날아갈 수 있는 팜므파탈이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도 그녀의 성격이 잘 나타나있다. 사랑하는 그 순간에는 열정을 퍼붓지만 지속적이지 않다. 그런 그녀가 만인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 같은 투우사의 저돌적인 구애를 거부하기 힘들었을 거다. 토레아도 아리아를 부르며 관객 모두를 홀리는 멋진 새 연인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인지상정이고 돈 호세도 측은 하지만 변심한 애인은 보내주어야 한다. 잔인하지만 그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 건 돈 호세의 선택이다. 


상대를 위한 희생과 노력이 사랑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그동안 사랑에 쏟은 시간과 삶이  쓸모없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변심했다고 같이 한 시간이 거짓은 아닐 수 있다. 사랑의 기억과 경험을 같이 했으니 그걸로 감사하며 보내주어야 한다. 수명이 다한 사랑은 연명해야 소용이 없다.  지금 이별로 너무 힘들지라도 사랑으로 행복해 죽겠다하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기뻐할 필요없다.

그 또한 지나간다.


8 APRIL 2024

MONDAY, 7PM

MAIN STAGE


Conducted by Antonello Manacorda

CAST

CARMEN: Aigul Akhmetshina

DON JOSÉ: Piotr Beczala

ESCAMILLO: Kostas Smoriginas

MICAËLA: Olga Kulchynska

ZUNIGA: Blaise Malaba

FRASQUITA: Sarah Dufresne

MERCÉDÈS: Gabrielė Kupšytė

DANCAÏRO: Pierre Doyen

REMENDADO: Vincent Ordonneau

MORALÈS: Grisha Martirosyan

CHORUS: Royal Opera Chorus

ORCHESTRA: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CREATIVES

COMPANY :The Royal Opera

MUSIC: Georges Bizet

LIBRETTO: Henri Meilhac and Ludovic Halévy

DIRECTOR: Damiano Michieletto

SET DESIGNER: Paolo Fantin

COSTUME DESIGNER: Carla Teti

LIGHTING DESIGNER: Alessandro Carletti

DRAMATURG: Elisa Zanino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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