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충분했던 것 같은데 정작 나는 제외됐었다.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

by 에시

회의가 끝난 뒤

사람들은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나는 노트북을 닫지 못한 채

마지막 정리된 내용을 한번 더 읽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남았다.


나는 기준을 만들어왔던 것 같다.

일의 기준, 말의 기준, 태도의 기준.

일이 어그러지지 않게,

관계가 망가지지 않게.


하지만 그 기준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선이 아니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아니라

반드시 넘어야 하는 선이었다.


사람들이 “그건 네 몫 아니야”라고 말할 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제가 할게요.”

그 말은 늘 맞았고,

그만큼 나는 조금씩 사라졌다.


일은 끝났고 결과도 남았다.

사람들도 만족했다.

그런데 나에게 남은 건

공허함과

“다음엔 좀 쉬어야지”라는 다짐뿐이었다.


기준을 지키느라

기쁨을 쓸 몫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요즘은 가끔

기준을 세우기 전에 묻는다.


이 선은 일을 지키기 위한 건지,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한 건지.

아직 자주 헷갈리지만

그래도 연습 중이다.


기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나를 넣는 연습을.

작가의 이전글나를 몰아붙이던 시간의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