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돌려주세요.
"이 더운 날, 빌려주는 양산이나 우산 없나요? 그늘 하나 없고 땡볕이 많은 하회마을을 어떻게 다녀야 하는지 앞이 깜깜합니다."
하회 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강한 햇볕 때문에 힘들다며 양산을 빌려 달라고 한다. 다른 관광지에 가면 빌려주는 우산이 있다며 여기도 그런 제도를 시행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쏟아낸다.
비 내리는 날도 마찬가지다.
"아니, 이 큰 마을에서 우산 하나 빌려주지 않나요? 비가 오지 않아서 우산을 차에 두고 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비가 쏟아지니 이거 참 큰 낭패네요~."
하회 마을에도 양심 양산(우산 겸용)이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7일), 올 여름 동안 남아있던 양산 10여 개마저 모두 사라졌다. 마을을 찾은 일부 관광객이 땡볕이라며 양산을 갖고 마을로 들어간 뒤 보관소에 반납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간 것이다.
물론 대부분 일부러 가져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무심코 들고 가버린 것이다. 안동시가 5년 전에 하회 마을에 마련한 양심 양산은 200여 개. 해마다 조금씩 사라지더니 결국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보관소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양심 양산은 하회 마을 보존회 사무실 앞 보관소에서 자율적으로 가지고 간 뒤 사용하고 반납해야 한다. 이걸 지켜 서서 관리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양심에 호소해 자율적으로 운영해 왔다.
양산이 모두 사라지면서 보관대도보존회 회의실 안으로 치워졌다. 빈 거치대를 보면 관광객들이 '왜 양산이 없느냐'고 묻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마을 안내 홍보물이 대신 차지했다.
얼마 전 울산 태화강 국가 정원에 마련한 양심 우산 회수율이 낮다는 보도를 봤다. 천개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20%만 남았다는 얘기였다.
양심 양산이나 우산은 국가 예산으로 만들었다. 결국 국민 세금이다. 양심 양산이나 우산을 그냥 가져가면 국민 세금을 가져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동시는 내년 여름이 오기 전에 양심 양산을 또 준비해야 한다. '(관광객은)가져가고 (지자체는)만들고'가 반복되는 것이다.
"뭐! 이까짓 것 갖고~"이라고 무시한다면 자신의 양심을 버리는 것이다.
양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며칠 전까지 몇 개라도 남아있었는데 관광객이 다 가져가고 지금 남은 것이 없다고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하회 마을 근무자나 늘 관광객과 함께 움직이는 해설사들은 곤혹스럽다.
관광객이 가져간 양심 양산은 '안동시 양심 양산'이란 문구가 인쇄돼 있다. 이 양산을 들고 자신의 마을이나 시가지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가져가지 말고 반납하라는 의미로 양심 양산이란 이름을 붙인 사실을 설마 모르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양심 양산이나 우산을 가지고 간 관광객들은 하회 마을로 돌려주기를 요청한다. 택배 등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반납하는 성의라도 보여주면 양심을 지키는 일이 된다.
12일 오후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우산 없이 하회 마을을 찾은 한 관광객이 '양심 양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다는 나(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양심 양산을 가져갔다고요. 참 기가 막히네요. 아직 우리의 시민 의식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히려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