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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May 23. 2024

안동내방가사이야기 8. 우리 어머님 너무 안 됐어요.

남동남 시어머니 인생 회고가

청송군 59세 남동남 씨의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 회고가’는 남편 잃고 자식 잃은 시어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추, 당초(唐椒) 보다 더 맵다는 시집살이를 생각하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는 참으로 힘든데, 남 씨의 내방가사는 시어머니를 마치 친정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시어머니의 고된 삶의 흔적을 글로 남겼다.   

  

'시어머니 인생회고가'를 읽고 있는 남동남 @이호영

일제강점기 말 때 많은 여성이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갔다. 지금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는 위안부 할머니가 있다. 남동남 씨의 시어머니 파평 윤 씨, 윤말출은 일본 처녀공출을 피하려 14살의 어린 나이에 이웃 사는 평해 황 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남동남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이호영 

“시어머님 인생사를 대강기록 하여보니

말로어이 표현하며 들은대로 적어봐요

청송부남 웃화장골 파평윤씨 그가문에

딸삼형제 둘째딸로 금아옥아 성장할때

시대조화 일본속국 처녀공출 희생자로 

열네살적 어린나이 처녀공출 안보내려

이웃하는 평해황씨 네 살많은 이웃총각

부모님의 주성으로 부부인연 맺으셔서

부모동기 사랑속에 알콩달콩 살아갈때”

                      <남동남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


이웃 총각은 시어머니보다 4살 더 많았고, 부부는 부모 동기 사랑 속에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에게 날아온 입영 영장은 다정했던 가정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남편 황병식은 대구전투에서 큰 부상으로 대구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이른다. 아내와 당시 1살이던 아들 성기를 찾았으나 가난 때문에 청송에서 대구로 갈 차비가 없어 아내와 아들은 가지 못하고 황 씨의 어머니만 면회를 갔다. 그리고 부상한 황 씨는 아내와 아들이 오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다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7일 만에 전사한다.     


청송에 있던 아내는 남편이 전사한 그 날 밤, 남편이 군복을 안고 피 흘리며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한다. 남편은 제대날짜를 하루 앞두고 전사했다. 살아생전 보고 싶다던 아내와 아들을 못 본 한이 맺힌 탓일까, 전사한 날 아내의 꿈속에 나타날 정도로 그리워하고 그리워  했음에 틀림없다.     


“내방가사를 쓴 동기는 제가 살아보니까, 우리 어머님이 너무 너무 불쌍하신 거예요.

남편이 전사당했다고 꿈에서 피흘리는 군복을... 군복을 끌어안고 꿈에 오셨더래요. 눈을 떠서 옆에 아지매가 계셨는데, ‘아지매? 꿈에서 남편을 봤어요?’ 하니까 아이고, 이 사람아, 질부야 큰일났다. 무슨 일이 났다. 하시더라면서, 그날이 바로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인기라. 전사했다고 연락을 받고 (대구에)가려 하니까 돈이 없어서 우리 어머님은 못 가셨어요.”

                                             <남동남 인터뷰 중에서...>      


“육이오란 전쟁중에 대구전투 전장에서

전쟁중에 폭격부상 대구병원 중환자실

정신들어 연락하길 아내아들 오라는데

차비없어 못가보고 시조모만 가서보니

성기어미 왜안오고 어머니가 오셨나요

어머니는 여인숙에 주무시고 집에가소

어린아들 마누라가 보고싶어 하셨는데

그의원을 못푸시고 칠일만에 전사했다.

돌아가신 그날밤에 군복안고 피흘리며

집에들어 오는꿈을 꿈속에서 만나시고

살아생전 보고싶다 아들하고 한번오라

돈이없어 못갔으니 이가슴이 무너졌다.

제대날짜 하루두고 전사하신 시아버님

서울시내 동작동의 현충원에 모셔두고”

               <남동남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     


남편이 전사하고 시어머니 윤말출의 시집살이는 더욱 힘들었다. 시조모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전사를 며느리 탓으로 생각하고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는 모진 말을 들으며 집에서 나가라 한다. 친정마저도 ‘죽어도 그 집에서 죽어라’라고 문전박대하자 갈 곳 없는 시어머니는 친정 언니가 사는 경주 안강으로 찾아가 모진 삶을 이어간다. 물론 아들 성기도 시어머니에게 뺏겼다. 시어머니는 두고 온 아들을 위해 밤낮으로 길쌈 방직에 남의 농사 품을 팔아 손톱 발톱 다 닳도록 일을 했다고 한다. 14세에 결혼해 20세에 혼자된 여인네의 몸으로 아들마저 없었다면 허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 년 삼백육십일을 한숨으로 지냈다는 시어머니는 아들 나이 16살에 엄마 찾아 포항으로 오면서 모자 상봉을 계기로 다시 시댁 걸음을 한다. 아들 성기가 27세에 내방가사 저자인 영양 남 씨 남동남을 만나 백년가약 성혼을 하면서 시어머니의 삶도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게 된다. 직장 따라 서울 생활하던 아들 황성기 씨가 2005년 명퇴를 하고 귀농했고, 며느리 남동남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7년에 귀향했다. 작은 농장을 만들어 고향 청송 귀농 생활이 순탄하면서 시어머니도 과거 힘들었던 삶을 잊고 자식 부부와 손자, 손녀 등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던가 2018년 1월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온전치 못하던 도중 아들 성기가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별세하고야 만다. 


“치매에 걸린 어머님이 아들(사망한 남동남의 남편 황성기)을 자꾸 찾아요. 어머니께 바른 소리를 할 수 없어서 거짓말로 아범은 병원에 있어요. 다리를 다쳐서 입원해 있어요. 병원에 같이 가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혀드리면 어머니께서 병원에 온 사실도 모르고 ‘이제 집에 가자 ‘ 하시면 모시고 왔어요. 계속 그런 식으로 모시고 다녔어요. 집에서 운명하셨는데 그때서야 제가 고했어요. 아버님도 못 보시고 돈이 없어 못 봤으니 아범도 못 보시고, 죄송해요. 어머님께 거짓말을 했다고 알렸습니다.”

                                          <남동남 인터뷰 중에서...>   

  

“어머님과 아들며늘 손자손녀 한집에서

사람사는 가정되여 행복하다 하셨는데

이천일팔 삼월십이 청청벽력 웬일인가 

손님하고 저녁식사 대접하고 온다더니

생떼같은 그사람은 돌아오지 못한사고

아드찾는 어머님께 바른대로 말못하고

몸이아파 병원있어 만나보지 못한다고

초상장례 다치뤄도 그말못해 죄인인데

아버님도 못보시고 아들또한 못만나니

치매라는 병명으로 손자보고 아들이라

아침일찍 어디가냐 출근하는 손자막고

며느리는 언니라며 배고프다 애기되고

잠시정신 돌아오면 돈주머니 던지면서

아들문병 빨리가자 택시부러 가자시네”

                  <남동남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     


시어머니 윤말출은 먼저 사망한 아들을 찾다 결국 2021년 3월 92세로 사랑하던 아들 곁으로 떠나고 만다. 결혼한 지 몇 해 되지 않아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자신보다 먼저 보낸 한을 안고 세상과 하직했다. 아들이 사망할 때 치매에 걸렸던 시어머니는 10여 년을 더 고생하다 돌아가실 날을 앞두고 남편을 찾고 아들을 찾아 며느리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며느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에게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줄로만 알고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아들을 찾고 손자를 아들로 착각하기도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서야 아들의 사망을 알렸다.     

남동남, 시어머니 윤말출, 남편 황성기 @남동남 제공 

“가신날을 아시는지 남편찾고 아들불러

보고싶다 사랑한다 당신남편 그리워라

한탄하는 그소리에 며늘가슴 무너져요

시어머님 구십이세 세상근심 놓으시고 

이세상을 하직하니 불쌍코도 가련하다

시어머님 가신지도 수개월이 되고보니

이제야 저의마음 추수려서 표현하니

어머님의 천년집은 동작동의 국민묘지

아버님과 함께모셔 두분함께 계시오니

이승에서 못한사랑 그곳에서 풀으소서

애들아빠 당신아들 이제야 만나셨죠”

                    <남동남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     

내방가사 '사부가'를 읽고 있는 남동남@이호영

내방가사 작가 남동남은 ‘시어머니 인생회고가’와 함께 ‘사부가’도 지었다. 2018년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2019년에 ‘사부가’를 지었다. 남동남은 이 사부가로 제23회 전국내방가사 경창대회에서 창작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새벽하늘 쳐다보니 샛별들은 초롱초롱

조각달은 반짝이니 당신영혼 표현인가

인간세상 못한한을 천상에서 즐기온가

당신무덤 찾아오니 고요하고 적막하다.

영혼있어 반기어도 내가정녕 못느낀가

당신이리 무심하면 남은나는 어찌하오

우리아이 삼남매가 아버지를 찾는다오

구십여세 어머님도 당신만을 찾는다오

꿈에라도 보이오면 이설움이 덜하올까

취한사람 길가듯이 이리비틀 저리비틀

초목들은 봄을만나 만물생장 하건만은

새벽마다 일어나서....”

              <남동남 내방가사 ‘사부가’>               

남동남 창작 내방가사 '사부가'@이호영

남동남의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는 남편 잃고 홀로 살아야만 했던 우리 여인네들의 고단했던 삶을 대변한다. 이 내방가사를 읽거나 낭송을 들으면 누구나 가사 속의 삶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의 서러움이 묻어나고 한국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가난 속에 살 수밖에 없었던 어르신들의 삶은 실제로 많은 사람이 겪었던 고난이기 때문이다. 우리 어매도 그랬다. 나도 그랬다. 어디 쉬운 삶이 있었던가? ‘시어머니 인생회고가’와 함께 ‘사부가’도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시어머니의 한 못지않게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먼저 보낼 수밖에 없는 남동남의 가슴 아픈 한이 가사 속에 느껴진다. 이 땅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들의 고단했던 인생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훤히 보인다.      


“평소생전 푸념하신 어머님의 하소연을

며늘되는 동남이가 하신말씀 생각나서

가사조로 기록하여 어머님을 생각하며 

두고두고 볼것이니 아버님요 어머님요

부자모자 만났거던 당신기맥 손자손녀

운복걸고 빌어주소 세월가면 저도또한

그곳으로 갈것이니 못한효도 하올게요.”

                  <남동남 내방가사 ‘시어머니 인생회고가’ 마지막 단락>


출처:한국국학진흥원 기획 '안동문화 100선'.  이호영. 『어와 벗님네들』. 안동내방가사이야기. 민속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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