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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Feb 08. 2024

안동문화관광이야기

2. 하회마을은 3관왕, 병산서원은 2관왕

[하회마을은 3관왕, 병산서원은 2관왕]     


“그거 아세요? 여러분이 서 계신 병산서원이 2관왕이라는 걸요. 하회마을은 3관왕이고요.”     

병산서원에서 안동문화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다. 2관왕? 3관왕? 뭐 이곳에서 경기나 열렸나 싶겠지만 씩 웃으면서 하는 해설을 들었을 때,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관왕, 3관왕이란 유네스코 이야기다.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극했고, 병산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의 한 곳으로 세계유산이 되었다. 또 2022년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한국의 탈춤’ 가운데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하회마을은 마을 전체와 마을 안에 있는 병산서원, 마을에서 유래된 하회별신굿탈놀이까지 세계유산이 되면서 3관왕에 올랐고, 병산서원은 2010년에 하회마을에 이어 2019년 또다시 세계유산이 되었다. 국내 2관왕, 3관왕도 아니고 세계 2관왕, 3관왕이니 자랑할만하다.      

병산서원 앞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표지석 @이호영

병산서원 관광 해설은 대부분 세계유산기념비 앞에서 시작된다. 병산서원은 옛날 학교였다. 그것도 사립 대학교다. 당시 양반, 선비들이 입학하는 대학교라고 하니 당시도 공부를 잘해야 서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 입학 정원은 10-20명에 불과한데 안동 지역만 해도 양반가가 수없이 많았으니 우리 아들을 대학인 서원에 보내기 위해 공부도 잘해야 하겠고 부모들의 극성도 대단했을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이 왜 병산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잠시 뒤돌아보시면 이해할 수 있어요. 자 돌아보시겠어요. 바로 앞에 낙동강이 있고요. 모래사장이 좋지요. 강 건너 보이는 산이 병산인데요. 어때요? 낙동강 뒤에 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마치 삼국지 영화에 적벽이 연상되지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산과 골짜기가 몇 개인지 한번 헤아려보세요. 몇 개인지를 기억하세요.”     


병산서원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심은 나무가 있다. 두 명의 미국 대통령과 우리 대통령이 심은 나무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가 퇴임 뒤 한국, 그것도 안동을 찾아 기념식수를 했고 현 대통령도 불과 얼마 전에 병산서원을 찾은 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     

미국 대통령 부시 기념식수 @이호영

세계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다녀갈 정도로 뛰어난 서원이 병산서원이다. 기념 화단을 지나 만나는 병산서원 대문에 걸린 현판 ‘복례문復禮門'은 '논어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왔다.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이곳을 지나려면 예로부터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옷을 단정하게 하고 걸음걸이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한다는 얘기인데, 마치 중고등학교 때 정문을 통과하려면 선도부의 눈길을 느껴야 하는 것처럼 공자, 서애 선생의 눈길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병산서원 정문 '복례문' @이호영

복례문 솟을대문 형태다. 솟을대문은 말을 타고 들어오기 위함으로 세도 높은 양반가 주택의 정문에 설치했다. 하회마을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의 정문도 솟을대문이다. 그 옛날 양반, 선비가 자제들은 학교에 들어오면서 말을 타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훈장 선생의 말이 들어왔겠다 싶기도 하다. 

만대루와 병산서원, 입교당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호영

복례문을 지나면 가로로 길게 뻗는 누각 ‘만대루’가 관광객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만대루 마루 밑으로 멀리 ‘병산서원屛山書院’ 현판이 보인다. 병산서원 마당에 오르려면 만대루 밑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하는 구조이다. 극기복례 정문과 만대루 사이 에는 작은 연못 ‘광영지’가 있다. 광영지는 네모난 연못에 둥근 모양의 작은 섬을 안고 있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네모는 땅을 의미한다. 섬에 심은 나무는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에 ‘천, 지, 인’의 사상이 담겼다. 

광영지 '천, 지, 인' 사상을 담고 있다.@이호영

광영지를 보고 만대루 마루 밑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면 막혔던 시야가 차츰 트이기 시작한다. 포장된 물건을 한 꺼풀 벗기듯이 병산서원의 모습이 한 발자국 오를 때마다 드러난다. 마치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처럼 이곳 병산서원도 산지형 서원의 전형적인 모양을 띄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마당에 올라서면 비로소 ‘병산서원’ 현판이 붙은 입교당이 보이고 동재, 서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입교당은 당시 교실이고 동재, 서재는 오늘날 기숙사다. 이곳에서 양반 선비가 자제들이 공부했다. 대학 과정을 원장이나 훈장에게 수업받았다. 일대일 수업으로 외우고 암송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입교당 뒤에는 선생과 그의 아들 유진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 사당이 보인다.      

병산서원 입교당 @이호영

입교당을 등지고 낙동강 쪽으로 돌아서면 누각 ‘만대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병산서원의 아름다운 풍광은 마당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느껴야 한다. 만대루 기와지붕과 굵은 기둥, 마루를 보는 순간 오르고 싶은 충동이 절로 난다. 만대루는 늦을 만(晩), 대할 대(對), 다락 누(樓) 한자를 쓴다. 하루 가운데 늦은 때에 자연을 대하는 누각이란 뜻이다. 왜 만대루인가는 오전보다, 오후에, 오후 가운데서도 늦은 오후, 해 질 녘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낙동강과 모래사장, 병풍처럼 둘러싸인 병산과 서원 등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만대루晩對樓는 중국 시성 두보의 「백세성루白帝城樓」라는 시詩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8개 기둥에 7칸의 긴 누마루 건물이다.  

만대루, 기둥 8개에 7칸 구조이다 @이호영

 서원 앞 낙동강 건너 병산이 병풍을 이루듯이 입교당 마당에서 바라보는 만대루도 병풍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병풍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병풍 폭마다 그림이 다르듯이 만대루 병풍 폭마다 그림이 다 다르다. 병산과 어우러진 절경이 만대루 기둥 사이에 들어와 병풍을 이룬다. 절묘한 배치에 관광객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병산서원에 들어오기 전에 낙동강 건너 병산을 바라보며 헤아린 골짜기 수가 7개다. 만대루의 병풍도 7폭이다. 절묘하게 병산의 골짜기 숫자에 맞춰 만대루에도 7폭 병풍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산의 7폭 골짜기와 만대루의 7폭 병풍이란 의미를 찾은 이는 유명한 유홍준 박사이다. 그는 병산을 여러 차례 찾은 끝에 7폭의 절묘한 배치를 느끼고 이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넣었다고 한다. 그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아는 만큼 보기 위해 많은 국민이 답사 전에 공부하고 떠났다. 가서 보고, 공부한 내용과도 맞춰보고 함께한 자녀들에게 설명하고 우리 문화유산답사는 그렇게 진행됐다.        

존덕사, 서애 류성룡 선생과 그의 아들 류진의 위패를 모셨다.@이호영 

아시다시피 병산서원은 유명한 서애 류성룡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생 서거 이후 후학들이 세운 서원이다. 선생이 계실 때 제자를 양성했던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이 되었다. 1607년 선생이 서거하고 7년 후인 16014년에 건립됐다. 서원 건립에는 3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강학’과 ‘유식’, ‘제향’이 그것으로 병산서원에는 강학 공간인 입교당이 있고 유식 공간인 만대루, 제항 공간인 존덕사를 갖췄다. 서원 건립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이 서원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전국 서원 900여 개 가운데 47곳만 철거되지 않고 남았는데 안동에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뜯기지 않았다. 임금이 현판을 내린 사액서원이었고 퇴계와 서애 선생이란 위대한 선현을 모신 서원이란 점 덕분이다. 두 서원은 지금도 강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산서원에는 선비문화수련원이 있어 퇴계 선생의 교육과 덕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병산서원은 직접적인 강학은 아니지만 이 서원의 설립자인 풍산류씨 가문에서 가까운 풍산읍에 ‘풍산중학교’와 ‘풍산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서애 선생의 제사 때 학생들이 참여해 선생의 유덕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달팽이 뒷간, 지붕이 없고 출입문이 없다@이호영

서원 관리인이 생활하던 고직사 앞에 초가 형태의 작은 건물이 있다. 마치 달팽이 모양으로 둥글게 말려 있는데 ‘뒷간’이다. 이곳이 옛날 서원 하인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라고 하면 많은 관광객이 ‘어머’하며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붕이 없다. 출입문도 없다. 뻥 뚫렸지만 달팽이 모양으로 담이 말려 있어 안이 보이지 않는다. 알아서 볼일 보고 나오면 된다. ‘흠’ 정도 헛기침은 해야 한다. 아니면 낭패당한다. 지금도 사용할 수 있으니 용기 있는 분들은 한번 시도하면 어떨까 싶다.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 상당수가 병산서원을 들리지 않는다. 마을 안길만 한 바퀴 돌고 돌아가기 일쑤다.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병산서원을 패스해 버린다. 하회마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을 안을 둘러보고 시간을 내서 병산서원을 보면 금상첨화이다. 또 한 곳을 더 추천한다면 하회마을 앞 낙동강에 우뚝 솟은 부용대 정상을 올라야 한다.

부용대서 내려본 하회마을 @황제연

 부용대 정상에서는 하회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하회마을 안에서 병산서원, 부용대로 가는 길이 없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병산서원을 관람하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되고 병산서원에서 다시 부용대 정상까지 오르려면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관광객이 한꺼번에 3곳을 다 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하회마을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3곳을 모두 볼 것을 추천한다. 오늘 못 봤으면 다음에 한 번 더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회마을은 두 번, 세 번을 와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처럼 알고 오면 더 질리지 않는다.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낙동강 모래사장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해를 상상해보라.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릴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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