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해설을 듣고 아날로그 감성의 시간도 가져보세요.
"화순 적벽은 조선 시대 1519년 기묘 사화 후 동복에 유배됐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 적벽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소동파의 적벽부를 생각하며 이곳 이름을 적벽이라고 지었습니다."
"방랑 시인 김삿갓이 화순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돼 방랑을 멈추고 만년을 보내다가 이곳에서 숨졌습니다. 그의 묘지가 이곳에 있는데 사망 3년 후에 아들이 고향인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로 묘소를 옮겼다고 합니다."
여행작가 태원준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10일 청송군에서 열린 경북문화관광해설사 보수 교육에 강사로 참여해 자신의 여행기를 설명하면서 전남 화순 적벽을 이렇게 소개했다.
"화순 창랑천 약 7km에 걸쳐 수려한 절벽이 이어졌고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갈 수 있는 유명한 명승지였지만 지금은 화순군에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싹둑 잘린 듯한 바위 절벽이 7km나 이어졌다?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과 닮았다? 여행을 업으로 삼는 작가의 설명을 듣는 순간 갑자기 '화순 적벽'이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마지막 멘트,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잠시 '아이고, 날짜 정하고 시간 정하고, 헐레벌떡 다녀와야 하는 곳이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언제든지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요즘 식당을 가든지, 미용실을 가든지 예약이 필수이다. 그만큼 예약 문화가 발달하면서 점점 생활 속에 정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낯설다. 예약하고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시간에 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디지털 세상으로 변한 지 오래지만 아직 아날로그가 편하다.
요즘 여행이나 관광은 디지털로 시작한다. 하지만 여행의 완성은 아날로그가 돼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인 내가 현장에 가서 보고 느껴야만 여행이나 관광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행과 관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예약이라는 시스템인 디지털 세상을 통과해야 아날로그 감성도 느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디지털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두드리는 노트북도 디지털의 한 부분이다. 여행을 가려면 디지털 속에서 먼저 그 여행지를 검색해야 한다. 아까 언급한 화순 적벽을 관광하려면 일단 적벽의 위치를 살피고 승용차, 버스, 여행사 단체 관광 등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야 하고 시간과 코스, 매표와 주차 그리고 숙박과 음식 등을 살펴야 한다. 인터넷으로 모두 가능하다.
이러한 디지털 과정을 거치면 관광지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진다. 그리고 상당히 편리하게 관광을 진행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은 디지털 세상을 거친 다음 관광지를 찾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즉흥적으로 '어디, 어디를 가보자' 하면서 무작정 출발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교통수단과 장소를 간단히 파악한 다음 떠난다. 그리고 현장에 와서 여러 사람을 붙잡고 매표소 위치나 식당, 숙박 등을 물어보면 시간이 걸리지만 대부분 궁금증이 해소된다. 아니 현장에서 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발품을 팔아야 하는 수고를 감내한다면 뭐든 다 된다.
필자가 해설사로 근무하는 '안동 하회 마을'도 마찬가지이다. 하회 마을을 관광하고 싶은 분들은 승용차나, 버스, 여행사 등을 통하면 된다. 그리고 해설을 듣고 싶으면 하회 마을 홈페이지에서 '문화관광해설사 예약'을 찾아 각종 정보를 적으면 된다. 또 전화(054-840-3803)로 예약이 가능하다. 인터넷이 힘든 분들은 전화하면 해설사가 대신해서 인터넷에 예약해준다.
예약하면 해설사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는 '무료 동행 해설'이 가능하다. 동행 해설은 매 정시에 '종합안내소' 앞에서 출발한다. 10시, 11시, 1시, 2시, 3시, 4시 정시에 해설사가 예약한 관광객과 동행한다.
그리고 동행 해설 예약이 없을 때, 해설사는 마을 입구 안내판에서 동행이 아닌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관광객들에게 마을 길과 주요 관광 포인트를 설명한다. 하회마을에서는 365일 해설사가 근무하고 있기에 언제든지 예약하고 해설을 요청할 수 있다. 물론 근무시간 안이어야 한다.
요즘 참 바쁜 시대이다. 하회를 찾은 관광객들은 마을을 마치 인터넷 서핑하듯이 다닌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수준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대부분 문화재 설명판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읽지 않는다. 사진 찍기 바쁘다.
여행에는 여유가 중요하다. 물론 한 여름 땡볕에 다니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스윽' 지나가기보다 모처럼 온 관광지, 유적지를 그냥 스쳐 지나치듯이 본다는 것은 시간 낭비나 마찬가지다. 음식을 음미하듯 천천히 마을을 살피고 기와집, 초가집 구조는 어떤지? 이 집의 역사는 얼마나 됐는지?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조상들은 또한 누구였는지를 한 번 알아보는 시간과 감상하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하회 마을에는 이러한 여유를 가질 공간이 있다. 만송정이 바로 그곳이다. 하회 마을 북쪽 부용대 앞에 있는 소나무 숲에는 낙동강의 시원한 강바람과 넓은 그늘이 있다. 이 그늘 밑에서 방금 돌아본 마을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찍은 사진을 돌아보고 인터넷을 통해 마을의 인물과 역사를 되새겨보면 관광의 효과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여행이나 관광에서 디지털 시스템이 어긋나면 아날로그 감성도 망친다. 예약이 되지 않았거나 버스 등 교통 편이 인터넷 정보와 어긋나거나 맛집으로 소개된 음식이 전혀 아니거나... 등등 돌발 변수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면 관광지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 예약과 정보는 관광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디지털 수단이다. 디지털의 편리성만 의존하다가 아날로그 감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아날로그 감성은 분명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