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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동 Dec 11. 2023

한 달 살이 하러 왔는데 일 년을 넘게 살게 되었다

낮에는 따듯하고 밤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쌀쌀하던 5월에 나는 제주에 왔다.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사회에 낯선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달 스텝생활을 시작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스텝생활을 하면서 계속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인티를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사회에서의 나를 되찾으면서 사랑을 만났고 앞서 나의 글을 보았던 독자라면 알겠지만 우리는 같이 살고 있다.


한 달 살이 스텝을 끝나고 구한 집에서 6개월간의 생활이 끝나고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 구할 때는 여자친구 혼자 지낼 집을 구하고 내가 빈대(?)처럼 같이 살게 되었다. 그래서 지낼 때는 좁은 집에서 둘이 살게 되면서 더 붙어있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공간적으로 제한이 많이 생겨 단점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여기서도 6개월가량 머물 예정이니 도합 1년간의 제주살이가 되었다.


이삿짐을 옮기는 것부터 일이었다. 처음 기존 집에 들어갈 때는 혼자였지만 나올 때는 두 명분의 짐이었고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보냈기에 상당히 많은 양의 짐들이 나왔다. 살면서 또 이것저것 사고 보니 이렇게 좁은 집에 많은 짐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또 휴무를 사용한 이사가 아니라 일과 이사를 동시에 하다 보니 시간은 촉박했다.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로 최근에 고생하고 환절기에 또 걸려버린 감기는 설상가상이었다.


따로 업체를 부르지 않으면 이사는 참 고된 일이다. 심지어 우리는 부동산을 방문하지 않았다. 당근마켓에 있는 집들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는데도 꽤 오래 걸렸다. 어렸을 적 이사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지만 구미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서울에서 1-2년 그리고 다시 천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천안에서 또 한 번 이사를 했다. 나와 누나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이사를 다녔던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우여곡절 짐을 다 옮기고 나서 집을 보면 거의 전쟁터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짐을 풀고서 차곡차곡 또 정리하다 보면 아늑한 우리의 집을 보게 된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둘러보면 하나씩 하나씩 부족한 것들이 보인다. 전에 살던 집에서 나올 때 버리고 새것을 사기 위한 것들 그리고 겨울을 나기 위한 물품들이 필요했다. 심지어 기존에는 있었는데 이 집에는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럴 때는 이만한 게 없다. 바로 당근마켓을 킨다. 누가 보면 이 글이 당근마켓 광고인 줄 알겠지만 이사할 때 최고의 어플이다.


당근으로 의자와 선반을 구했다. 선반은 심지어 나눔이었다. 건조대, 전자레인지와 책상을 구매하고 이제는 침실과 먹는 공간 그리고 작업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나름의 정말 원룸이 아니라 하나의 집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이 고생을 했지만 언젠가는 또 떠날 때 똑같이 반복할 생각에 머리가 아프지만 지금 만족스럽게 꾸며진 집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왜 제주생활을 1년까지 하게 되었냐고요? 혹시 알아요? 1년이 2년이 되고 N년이 될지 몰라요. 이 섬이 좋아요. 좋은데 이유가 있나요? 그래도 여러 이유 중 하나를 떠올리자면 제가 느낄 때 이 섬의 사람들은 정이 많아요. 제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귤 상자, 바구니등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귤 어차피 남으니깐 혹은 상품성이 떨어지니 무료로 주는 것 아니냐고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이제는 가까운 이웃에게도 우리는 무언가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생각해요. 가끔씩 들리는 제주 방언들도 정겹고요. 앞으로 더 알아가고 싶은 매력의 섬 '제주도'에 머물면서 오래 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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