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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실 Feb 21. 2024

가장 아름다운 인연

너와 함께 벚꽃 엔딩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법에 반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든 경험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호기심이 많은 딸아이는 대학 입학 후 밴드 동아리, 보컬 학원, 작곡 수업, 카페 아르바이트, 일상 유튜브 제작 등 다양한 도전을 이어갔다.

 고등학교까지는 입시 준비 기간이었기에 딸과 추억 쌓기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여의찮았다.

대학생 딸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매번 심드렁한 딸의 표정을 바라보며 눈치껏 물러서야 했다. 하기야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기라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지만 내심 섭섭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 마스크 해제 소식이 들리자마자 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우리 기타 배울래?”

 “좋지. 근데, 너랑 나랑 시간 맞출 수 있을까?”

 우리 모녀는 각자의 생활 패턴이 너무 달라서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서로 얼굴 보기조차 쉽지 않았다.

 “엄마, 서로 바쁘니까 주 1회 레슨 먼저 받고, 다시 횟수를 조절하면 될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기타 교실에 나란히 등록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오빠가 밴드 활동을 했었다. 나는 기타 치는 오빠의 모습이 부러운 마음에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한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에 못 이뤘던 기타의 꿈을 30년도 넘어 딸 덕분에 목전까지 다가가게 되었다.


친구 같은 딸

 딸은 기타를 새로 장만했으나 나는 중고 기타를 수소문하여 첫 수업에 갔다. 컬러풀한 헤어스타일과 귀걸이, 그리고 패셔너블한 옷차림의 원장님이 우리를 반겼다. 보통 젊은이들이 주 고객인데, 모녀지간이 등록해서 의외였단다. 나는 딸과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기본 기타 코드를 유튜브로 배워두어서인지 수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왈츠, 고고, 디스코, 트로트, 블루스, 탱고, 슬로우고고, 슬로우락, 셔플, 다양한 기타 리듬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나마 고고와 슬로우락이 초보자인 나에게 가장 만만했다. 리듬 하나를 배우면 1주일 동안 연습해야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 후 30분을 기타 연습 시간으로 정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매일 지키려고 애썼다. 기타를 배우기 전에는 딸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도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하지만 기타 연습을 시작하면서 얼굴 마주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통기타 연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피크나 손톱을 이용한 연주법인 스트로크 주법 그리고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핑거스타일 주법. 스트로크 주법은 주로 신나고 빠른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고, 핑거스타일은 서정적인 발라드 음악을 연주할 때 적합하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는 딸은 신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빠른 리듬을 선호하는 딸은 주로 스트로크 주법을, 발라드를 좋아하는 나는 핑거스타일을 주로 연주했다. 수업은 원장님이 그날의 주요 코드와 주법을 알려주시면 나머지 시간은 우리가 연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딸과 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같이 배운다는 것이 참 새로웠다. 코드를 짚는 게 아직은 서툰 딸이 손가락을 비틀어 가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찡긋거리던 귀여운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새 훌쩍 자라 엄마와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딸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너와 함께 벚꽃엔딩

 기타학원은 대구 동성로 번화가 한복판에 있다. 1주일에 한 번 기타 레슨 하는 날이면 약속되는 딸과의 달콤한 데이트. 수업을 마친 후 맛집 투어하기, 간식 코너에서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탕호루’ 사 먹기, 쇼핑하기, 미용실에서 같은 펌 하기 등등 의견이 안 맞아 때론 티격태격하지만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하루는 기타 연습 도중 딸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엄마랑 기타 배울 생각을 했어?”  과거 사춘기 때 잠깐 방황하며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것도 떠올랐고, 앞으로 자기가 독립하면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난 그냥 엄마랑 기타 배우고 싶었어."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는데 딸의 속 깊은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 집의 명품은 엄마야!’

 지난번 생일에 직접 새긴 케이크 문구로 나를 감동 시킨 딸. 다섯 살 터울 남동생을 바쁜 부모 대신 챙기던 속 깊던 아이, 어느새 친구가 되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 노래한다. 딸아이가 연주하는 ‘벚꽃앤딩’의 흥겨운 리듬이 세상 어떤 세레나데보다 달콤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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