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골든 벨' 행사를 개최한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라서 준비도 만만치 않다. 한 달 전부터 듣기평가, OX 퀴즈, 객관식, 작문, 문법문제 등
100여 문항을 출제한다. 1, 2, 3등에게 시상할 현금 준비, 그리고 참가자 전원에게 줄 선물 고르는 것도 즐거운 고민꺼리 중 하나다. 수업하면서 행사를 위한 여러 가지 준비 과정이 때로는 피곤하다.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히 학습한 아이들이 자신의 영어 실력을 확인하고, 동기 부여 받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수고로움이 결코 힘들지만은 않다. 이런 나의 준비 과정 못지않게 아이들 또한 '골든 벨'에 임하는 자세가 특별하다. 지난해 본선에 떨어졌던 세준이는 올해 꼭 1등해서 외할아버지께 선물할거라고 호언장담했다
행사는 오후 3시 시작이다. 2시 조금 넘어 벌써부터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원 문을 열자마자 책상 위에 한가득 진열되어 있는 각종 선물과 간식꺼리들을 보며 마냥 신난 표정을 지었다. 교실 한 쪽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너무 긴장되어 떨린다.'는 아이, '본선에는 꼭 들어가고 싶다'는 아이. '난 등수 안에는 반드시 들고 싶어''라는 아이 등. 각각 저마다의 다짐과 바람을 얘기하느라 왁자지껄했다.
행사 시작 10분 전, 각자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미니 화이트 보드판과 펜, 지우개를 나눠주고 골든벨 행사 시작전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3시 정각! 드디어 응원의 큰 박수와 함께 골든벨 행사를 시작했다. OX 문제로 출발한 영어 퀴즈는 객관식, 주관식, 작문 문제로 이어졌다. 문제를 맞춘 아이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화이트 보드판을 높이 치켜들었다.
반면, 틀린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과 함께 '패자부활전'을 기대하며 교실 뒷쪽으로 이동했다.
행사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아이들의 열기도 점점 달아올랐다. 교실이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는 학원 앞을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간혹 낯선 사람들이 원인모를 함성 소리에 이끌려 불투명 유리문 안을 살피는 모습도 보였다. 드디어 세 번의 패자부활전을 마치고 본선 진출자 7명이 가려졌다.
1, 2, 3등을 가리는 본선전 직전에 아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힐겸,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다. 피리, 리코더, 마술, 아이돌 춤 따라하기, 랩 등 미리 지원했던 학생들은 저마다의 재능을 뽑냈다. 우리 교실 얼짱, 현민이가 아이돌 음악에 맞춰 멋지게 보여준 댄스, 평소 너무나 조용했던 민수가 들려준 파워풀한 '랩',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며칠 동안 연습했다는 준서의 '카드 마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비의 피리 연주 '밤양갱'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교실은 한 마디로 축제 분위기였다.
떨어져도 괜찮아!
본선에 올라간 아이들은 즐거우면서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규비, '등 수 안에 꼭 들고 싶다'는 민수, 너무 떨려서 '아무 생각이 안난다'는 루아. 행사에 임하는 아이들의 느낌과 바램을 들은 나 또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승전을 앞두고 간단한 인터뷰를 마쳤다. "여러분! 본선 진출자들에게 힘내라고 3, 3, 7 박수를 힘껏 쳐 볼까요?" "네!" 수십 명의 아이들은 응원의 마음을 뜸뿍 담아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첫 번째, 중등 듣기평가 문제는 7명 모두 통과했다. 두 번째 문법 문제에서 3명이 탈락했고 그 중 민수도 포함되었다. 화이트 보드판을 들고 응원석으로 향하던 민수가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게 아닌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괜찮아! 괜찮아!" 합창하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아쉬움이 컸는지 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민수는 급기야 소리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로부터 먼 발치에 있던 나는 마이크에 대고 "민수야! 잘 했어. 내년에도 기회가 있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마. 괜찮아."라고 다독였다. 수상을 기대하며 골든벨 준비를 했을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민수의 우는 모습이 짠해 보였다. 1년 동안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확인하고 동기 부여를 얻을 수 있는 영어 골든벨!
1등상은 작년 본선에 떨어졌던 세준이가 수상했다.
올해 골든벨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는 세준이! 1년 동안 꾸준히 공부한 결과가 수상으로 이어져서 더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90분 동안 진행된 행사는 시상식과 함께 아이들에게 한아름의 선물을 나눠주고 끝났다. 나와 전임 강사가 뒷 정리를 마치고 커피 타임을 가지려는 순간, 교실 밖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수와 예준이의 목소리였다.
"민수야! 너무 슬퍼하지마. 그만하면 너 잘했어. 내년에 또 도전하면 되잖아." 본선은 통과했지만 수상을 못한 민수에게 예준이가 위로하고 있었다. "1년은 금방 지나가잖아. 우리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는 꼭 상 받도록 하자."
예준이는 상심한 민수에게 위로를 넘어 용기와 희망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본선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예준이. 비록 최종 본선에는 탈락했지만 친구를 위로해주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학년과 레벨이 다른 수십 명의 아이들을 한 공간에서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해마다 골든벨 행사를 진행하는 나에게 동료 원장님들께서 “귀찮게 왜 그런 행사를 진행하세요? 간단하게 간식만 챙겨줘도 충분할텐데...”라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행여 놓칠세라 한 문제 한 문제 귀 기울이며 집중하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