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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만난 첫 한국어 제자

한국어를 외국어로 가르치게 된 계기

지난달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하와이에 처음 와서 Second Language Studies 석사 과정에 들어갔을 때 용돈 벌이를 위해 한국어 튜터링을 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맡았었던 당시 석사 과정 학생이자 친구인 E가 하와이에 온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E는 내가 만나 본 학생 중에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같은 석사과정 학생이라 그런지 많은 공감대가 있었는데, E는 엄청나게 성실하고 자기 절제가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조깅을 몇 마일씩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만큼 쉴 때도 자신을 부지런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건전한 사람이었다. 나와 한 학기 튜터링을 한 뒤 E는 한국으로 일 년간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는 논문을 마친 뒤 취업에 성공해서 본토로 떠났다. 모든 과정에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경력을 더 쌓은 뒤 12년 후인 지금은 정부 부처에서 일하고 있다.


E와의 튜터링은 당시 영어 교사였던 나에게 한국어를 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의 기쁨과 보람을 처음으로 알려줬던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그동안 영어를 가르치면서 느낀 것보다 더 강한 열정과 벅찬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어의 어떤 말은 영어로 이런 뜻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실제로는 어떤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고 또 어떤 화용적 기능이 있는지 설명하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지금도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려운 개념들을 무사히 설명하고 나면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대학교에 갈 때는 별생각 없이 좋아 보여서 영어교육과로 들어갔고, 원래 국어를 더 좋아해서 국어교육을 복수 전공했고, 그래도 본업으로 영어 교사가 되길 선택한 다음, 좀 더 넓은 가능성을 찾기 위해 하와이에서 제2언어 교육 석사를 했다. 내 최종 목표가 외국어로서의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가 된 결정적인 계기가 E와의 튜터링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수다를 떨고, 숙제를 같이 하고, 발표를 같이 만들고, 발표 연습을 했다. 즐거웠다.


E는 한국어 실력이 줄었다고 겸손해했지만 영어와 한국어로 같이 대화하면서 우리는 12년 전의 젊고 불안했던 그때, 학교와 맞닿은, 비가 오는 초록의 마노아의 쌀쌀한 여름, 젖은 새벽, 스타벅스에서 졸린 눈으로 페이퍼를 쓰고 튜터링을 하던 우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때가 아직도 어제 같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이 결정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인생의 비슷한 챕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지나온 12년의 시간과, 나의 그간.

그리고 그 사이 각자에게 어떤 힘들고 정신없는 일들이 있었는지와는 상관없이, 한국학연구소 앞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그때 모습 그대로라며 킥킥 웃었다. 벌써 애가 둘이 된 나와 내년에 엄마가 되는 E는, 서로의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는 애들 때문에 서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알 수 없이 그냥 정신없이 내뱉는 애엄마들의 대화를 우리도 하고 있겠지… 한국어와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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