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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할 때 바디보드를 타야 하는 이유

파도와 물결의 원초적인 위로

와이키키’라고 하면  감고도 그릴  있는 풍경이 있다. 와이키키 동물원  삼거리. 동물원 앞의 한가한 매표소,  앞의  반얀트리, 자전거 거치대,  건너 모퉁이의 스타벅스,  앞의 복작이는 버스 정류장, 블럭마다 하나씩 있는 ABC 마트,  옆엔 육즙이 풍부한 거대한 햄버거를 파는 Teddy’s Bigger buggers 있다.  복잡한 일방통행 길인 칼라카우아 애비뉴로 이어지는 삼거리를 건너면 바다를 향해  뻗은 피어(pier) 있고  위에는 보드쇼츠를 입은 십대들이 무리를 지어 논다. 경치를 구경하는 관광객들도 왔다 갔다 한다. 이곳에  상주하는 듯한 자유로운 영혼들도 보인다. 이들은 하루 종일 바닷가에 의자를 펴놓고 놀다 우쿨렐레를 연주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피어에서 보드를  채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서핑보드를 팔고 나서 우울감을 느꼈던 나는 바디보드를 들고 와이키키 피어로 나갔다. 이곳은 와이키키 비치 중에서도 바디보드를 타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피어의 왼쪽으로는 잔잔한 파도가 오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수영을 하거나 튜브 등 각종 물놀이 용품을 가지고 논다. 피어의 오른쪽으로는 파도를 막아 놓은 어린이 및 수영 초보자용 구역이 있고 피어의 대각선 두 시 방향으로는 유명한 바디보드 스팟이 있다. 파도의 세트들이 몰려올 때 꼭 이 지점에서 타기 좋은 모양의 파도가 만들어져 피어 앞에서 부서지기 시작한다. 피어 위에 있으면 훨씬 더 먼 곳에서부터 모래사장까지 긴 파도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바디보드는 서핑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파도를 탄다. 아주 가볍고 넙적한 바디보드에 상체만 엎드린 채로 핀을 신고 발차기를 해서 팔과 다리 모두를 사용해 기동력을 얻는다. 하체가 모두 보드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서서 타는 서핑보다 좀 더 물에 깊게 닿은 채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수영 동작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리를 쓸 수 있어서 컨트롤이 더 자유롭기 때문에 초보자도 금방 배울 수 있다. 보드가 가벼워서 물의 방향과 흐름에 더 쉽게 반응하고, 파도 사이즈만 적당하면 비교적 올라타기 쉬우며 순간 속도도 빨리 올라가서 생각보다 폭발적이다. 바디보드는 엎드린 채로 허리를 세워 타고, 서핑은 서서 타기 때문에 같은 곳에서 섞여서 탄다면 잘못 부딪혔을 때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서핑과 바디보드는 서로 다른 스팟에서 탄다.


파도가 정면으로 다가올 때는 물속으로 피해야 하는데 이것이 덕 다이브이다. 보드를 아래로 눌러 파도를 퍼낸다는 생각으로 머리부터 아래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 다리로도 열심히 발차기를 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파도의 힘에 지지 않는다. 서핑 보드의 경우 숏보드는 보드를 아래로 눌러 덕다이브가 쉽게 가능하지만 롱보드는 사이즈가 크고 부력이 커서 파도 밑으로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보드를 잡은 채로 뒤집어 보드 아래 매달려 파도를 지나치는 터틀롤을 하는데 파도가 셀 경우 보드를 놓칠 수가 있다. 내가 서핑 강사의 보드에 맞아 얼굴을 다친 것도 파도가 너무 커서 강사가 본인의 보드를 놓쳤기 때문이다.


오아후 섬에서 바디보드로 유명한 바다는 와이키키 피어, 샌디비치, 마카푸, 케왈로, 마카하 등이다. 특히 샌디비치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이다. 로컬 보이들 중에서도 파도 좀 탄다는 사람들은 모두 샌디로 온다. 초보자나 관광객은 절대로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안전요원이 늘 감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대한 파도 때문이다. 파도가 부서질 때 바디보드가 그 사이를 빠르게 가르고 나오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이 모습을 보러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모인다. 주차장은 늘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트럭 뒤에 앉아 레게음악을 틀어놓고 테일게이팅하며 서너 시간이고 앉아 논다. 근처의 마카푸 비치와 이곳의 주차장은 경찰차가 늘 왔다 갔다 한다. 샌디비치의 파도는 오아후 섬에서 바디보드로 탈 수 있는 파도 중 가장 큰 숏 브레이크를 자랑한다. 메다꽂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서운 파도이다. 이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드는 이들은 대체로 젊고 에너지가 넘친다. 나와 남편도 십 년은 젊을 때 여기서 만났고 자주 가는 데이트 장소였다.


바디보드는 사실 하와이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했던 내가 유일하게 의존할  있었던 힐링 활동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정리하는 동안 만만치 않은 유학 생활과 떠나온 고향 생각에  부족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들었던  날들. 지금은 더없는 인생 동지이지만  때는 문화와 사고방식 차이를 좁히지 못해 부딪히고 갈등했던 구남친 현남편과 서로 싸운 날까지도 같이 파도를 타러 갔다. 오지 않는 파도를 기다리며  위에 계속 둥둥  있으면 굳이 파도가 오지 않아도 마음이 치유되었다. 울적한 마음도  파도를 얼굴에   맞고 나면 당장 숨 쉬는 것보다 중요한  없었기에 그런 단순한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그야말로 젊은 날의 기억. 와이키키 근처에  때는 바디보드를 들고 걸어가서 파도를  뒤에 야외 샤워에서 소금기만 털어내고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나른하고 팔다리가  아프고 물에 젖은 머리는 햇볕을 받아 바래며 말랐다. 이렇게 다녀오면 낮잠도 밥도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반대쪽으로 이사 온 후로는 멀어서 자주 가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데려와서 같이 바디보드를 타면서 말해주고 싶다.  못 할 고민이 있을  파도를 타러 오라고. 같이 살면서 서로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돌리지 말고 같이 파도를 타러 오자고. 물에는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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