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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한시십오분 Dec 31. 2022

스물한 번째 심상.

죽음에 가까운 형태가 그곳에 있었다.

사용 프로그램 : CInema4D, Redshift, AfterEffects


어느 정도 열려 있는 문들 사이에 

굳게 닫혀 있는 방의 앞에 선다. 

좁은 틈 사이에 향이 새어 나온다. 

수 없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일찍이 중독되어 문고리를 붙잡는다. 

우울의 색으로 바래진 빛이 마주한다. 

죽음에 가까운 형태가 그곳에 있었다.




  감정은 중독되기 쉽다. 기쁨, 즐거움, 감동, 행복 등 긍정적인 감정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고 있는 업무나 활동에 배가 되는 효과를 불러온다. 지속적으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불가하다. 긍정적 감정으로 환기할 수 있는 자극의 제한은 점진적으로 늘어난다. 이와 반대로 슬픔, 좌절, 불안,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은 노출될수록 임계점이 급하게 낮아진다. 한 번 발을 딛게 되면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추락한다. 이전과는 약한 자극에도 쉽게 빠진다. 이성과 자아는 감정에 삼켜진다. 자신을 놓는 기분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착각한다. 결과적으로 중독되어 독극물을 즐기는 역설이 발현된다. 


  칠흑에 동화된 눈은 어두움을 밝힌다. 좌절 속에서 더 깊은 절망을 맞이한다. 부의 감정은 느낄수록 더욱 흔들고 유혹한다. 주위와 비교, 현재에 대한 낙담, 미래를 향한 비관 등 도화선은 언제나 곁에 있다. 작은 계기로 시작했으나 동기는 더 사소해진다. 부정적으로 물든 이성과 사고는 감정을 따라 구렁텅이에 떠밀린다. 단순한 구조가 반복되면서 깊은 곳으로 자아를 몰아넣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심연에서 부정적 감정뿐인 세계를 구축해 혼자뿐인 삶을 살아간다. 


  우울은 탁하면서 한없이 밝은 색이다. 빛 하나 없는 암실에서 우울을 볼 수 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감정만을 맞대한다. 부정에 동화될 수 있었던 정말 사소한 근거는 주위 환경에서 본인으로 옮겨진다. 현재 결과에 대한 모든 원인은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게 된다. 비전공자로서 겪은 모든 경험들은 우울증을 대체한다. 결정에 대한 회의, 불투명한 미래를 향한 불안, 우수한 역량을 가진 자와의 비교와 열등감 등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날 빠뜨린 감정은 기어코 나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변질하도록 종용한다.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에 보이는 우울은 탁하며 밝아 형태를 알아보기 쉽다. 비전공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비관적인 상황을 계속 맞이하겠지만 일그러진 괴물에 먹히지 않도록, 이 끝없는 추락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음에 가까운 형태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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