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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한시십오분 Jan 03. 2023

스물두 번째 심상.

내 모습임을 깨닫기엔 이르지 않았다.

사용 프로그램 : CInema4D, Redshift, AfterEffects


멀지 않은 곳에서 보고 있다. 

멀겋게 뜬 눈엔 탁한 색이 차오른다. 

여리고 둔탁한 손을 뻗으니 

그 끝엔 닿으나 만질 순 없다. 

사람이라 보기엔 생기가 없었다. 

기계라고 보기엔 죽음에 가까웠다. 

내 모습임을 깨닫기에 이르지 않았다.




  비전공자가 느끼는 무력함은 자존감의 저하로 이어진다. 호기로웠던 시작에 반해 돌연히 닥치게 되는 무능함의 벽은 크다. 시행착오도 잦았지만 원활하게 학습은 이루어진다. 자신감은 쌓이고 자존감도 함께 비례한다. 교육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 실습이나 훈련을 시행하게 되면 큰 난관에 봉착한다. 가이드라인 하나 없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레퍼런스나 시장을 조사하면 상상 이상의 세상을 마주한다. 실제 시장을 이루는 전문가는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실력을 가졌다. 이들을 우러러볼수록 나는 끝없이 작아진다. 그저 열심히 노력한다 해서 같은 결과를 이룰 수 없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무력함은 질병처럼 전염된다. 초라함을 알아갈수록 더욱 작아져만 간다. 


  소수의 디자이너는 비전공자를 향한 선입견과 부정적 인식을 지닌다. 대개 취업을 위한 학원 졸업생들을 향한 안 좋은 시선이 많다. 학원은 취직률로 아웃풋을 나타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오직 개인의 취업만을 위한 포트폴리오 제작에 집중한다. 결과적으로 실무에 투입하게 되면 빈 수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로지 독학만 한 비전공자는 시장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더욱 위축된다. 만에 하나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뿌리 박힌 고정관념으로 채용에 있어 우선순위에 밀릴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과 내면세계로 우울을 발아시킨다. 수요가 없는 무능은 노력으로 증진해야 한다. 가슴에 못처럼 박힌 허울 좋은 이론이다. ‘잘하고 싶다’라는 욕심은 ‘잘해야 한다’라는 요구와 압박으로 변모한다. 놀랍고 감탄이 나오는 작품의 작가와 스스로 비교하며 열등감을 키운다. 멋대로 우열을 가르고 세상의 판단을 재단해 자신을 고립시킨다. 홀로 넓혀가던 세계는 다시금 작아지고 우울이 싹튼다. 무엇보다 앞서서 해야 할 일은 ‘감정에 포식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좀먹는 생각과 감정을 끊기 위해 연습과 공부에 몰입한다. 열등감은 방치하면 뒤를 향하게 만들지만, 앞으로 향할 수 있는 연료가 된다. 우울은 필히 지나쳐야 할 난관이며 항시 곁에 둬야 하는 감정이다. 또한 언제나 열심히 해왔으며 더 나아질 수 있는 자신임을 반증한다. 


내 모습임을 깨닫기엔 이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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