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르다 못해 척박한 땅 위에 서다.
메마르다 못해 척박한 땅 위에 서다.
풀 한 포기조차 용서되지 않을 듯한,
모래와 먼지만이 발걸음을 반긴다.
감았던 눈을 뜨면 낙원이기를 바랐건만.
이런 풍경일 거란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내가 택한 걸음이니 걸을 수밖에.
언젠가 맞이할 푸른 샘을 고대하며.
비전공을 선택하는 건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기에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단순한 흥미를 넘어 생계 수단, 직업적 수명, 미래 가치, 일과 삶의 균형 등 많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에 전공했던 진로에 비해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전공자는 구축된 인프라나 네트워크 없이 백지에서 시작한다. 연령이 낮을수록 실패 경험은 인맥이나 기술 등 부수적 이득으로 좋은 거름이 되나,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 곡선은 보다 가팔라진다. 뒤처진 만큼 더욱이 노력해야 하고 사회적 선입견 등과 같은 장애물도 넘어야 한다. 비로소 비전공은 항상 많은 위험 부담을 껴안고 나아간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한다. 미지에 대한 공포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도 적용돼야 한다. 사회는 학교와 같은 로드맵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 본인의 선택이 곧 책임으로 이어진다. 밑바탕이 없는 분야를 택했을 때, 압도적인 책임감은 예견할 수 없다. ‘미리 알았더라면’식의 후회는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 느낄 수 있다. 두려움 없는 객기의 결론은 서서히 목을 죄여온다. 미처 고려하지 못한 미래는 올곧이 자신의 것이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지만 타인에게 비전공을 권하고 싶지 않다. 사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막연한 창작 욕구로 시작했다. 향후 영상 디자인에 대한 시장은 어떠한지, 그 속에서 내 위치는 어느 정도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경제 가치와 직업 수명은 어떻게 결정될지 등 헤아리지 않았다. 현재에 이르러서, 순탄한 시간은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운이 좋게 대학 졸업 이전부터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최소의 값으로 최대의 역량을 요구받았다. 비전공에 대해 여러 단점이 있지만, 이점이 있다면 사고의 유연함이 있다. 이 장점을 바탕으로 수년간 시장에서 버텨왔다. 그러나 하나만을 꼽으며 비전공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권할 수 없다. 우위에 서기 위해, 아는 체를 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심도 있는 고민의 반복을 추천하는 제언이다.
메마르다 못해 척박한 땅 위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