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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트리우스 Feb 16. 2023

초고는 신나게 쓰자

센트리우스의 출간 일기 (4)

 '노인과 바다' 그리고 '무기여 잘 있거라'의 작가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모든 초고는 불쏘시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래도 설마 헤밍웨이 같은 훌륭한 작가가 저런 말을 했겠어? 좀 자극적으로 번역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대 작가님이신데! 그래서 구글에서 Hemingway + draft로 검색을 해 보게 되었는데..



Ernest Hemingway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 읽어보고 나니 불쏘시개라고 표현한 사람은 상당히 점잖게 의역을 한 것으로, 헤밍웨이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한 노력이 들여다보였다. 참전용사인 데다가 터프하기로 유명했던 헤밍웨이니만큼 그의 발언에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원고를 완성하고 나니 헤밍웨이가 저렇게 강한 표현을 통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만약 누군가 헤밍웨이에게 '선생님, 초고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초고를 쓰고 나서 검토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았단 말이지? 신나게 초고를 쓸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는데, 다시 읽어봤더니 고칠 점도 너무 많고 부족한 점도 너무 많았어. 최종적으로 책을 낼 때까지 대체 몇 번이나 수정했는지 모르겠다네.


 여러 권의 책을 쓴 뒤 내가 느낀 점이라면, 초고는 바로 책으로 펴낼 수는 없다는 거야. 작가 본인이 조금만 숨을 돌리고 다시 읽어봐도 창피할 정도로 부족하고, 수정할 것이 많거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원고의 초고는 쓰레기라고 생각하네.



 내가 초고를 완성한 것은 글을 쓰기 시작한 때로부터 대략 5주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새벽 시간이나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은 글을 썼다. 꼭지가 20~30개라고 치면 하루에 한 꼭지씩은 완성한 셈이다. 한글 파일에다가 글자크기 10으로 (페이지 설정을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한글 프로그램을 연 상태였다) 초고를 썼으며, 하루 평균 1.5쪽에서 2쪽 정도 써 나갔던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초고는 최대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와 내용을 시원하게 드러내면서 빠른 템포로 써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너무 망설이지 말고 최대한 거침없이, 신나게 쓰자.


 만약 내가 쓴 초고에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초고를 쓰는 작가가 해야 할 일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생생하게 글을 적어나가는 것이다. 만약 내가 글을 써 내려갔다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온기와 카페인이 채워지자 아직 잠을 덜 깬 내 몸의 세포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샷 두 개' 예전에는 커피 따위 하루 몇 잔을 먹어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요새는 카페인이 과해지면 두근거림이 심해져 커피를 마실 때면 그날 마신 샷의 개수를 헤아리게 된다. 나이가 들었다는 신호일까,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예비 작가분들 중에는, 초고를 쓸 때 단어 하나하나까지 너무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실수를 하는 분들이 있다. 같은 문장으로 예를 들면..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 흐음, 출근길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한가?


[출근하면서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 흐음, 사실 카페에 차를 갖고 갔었는데..


[출근하면서 운전대를 카페로 돌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 흐음, 이렇게 되면 카페에서 마신 느낌이 드는데 나는 드라이브스루에서 커피를 샀단 말이지.


[출근하면서 운전대를 카페로 돌려,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 흐음, 어디 보자. 문장이 길어지니 조금 어색한 것 같은데.. 일단 지우고 다시 써 보자.


[] 


 혹시 글을 쓰면서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을까? 이렇게 흐름이 끊기게 되면 짧은 시간 내에 좋은 글을 써내기가 쉽지 않다. 초고를 쓸 때는 어디 한 번 내 필력을 발휘해 볼까- 하는 느낌으로 최대한 시원시원하게 써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문장에 어색한 부분이 있어도 괜찮고, 불필요하게 같은 표현을 반복해도 좋다. 어차피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그 초고를 들여다보게 되면, 부끄러움이 작가를 사로잡게 마련이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미흡한 부분을 체크하고 처음에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금방 마음을 가라앉혔었다. 생 날것의 초고를 검토하는 사람은 작가 본인뿐이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다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것을 확인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창피하니까 출근을 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 할까?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얼른 짝을 맞춰서 신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길을 나서면 된다.


 초고는 퇴고 과정을 거쳐 좋은 원고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으며 위에서 언급했던 헤밍웨이 작가도 최소한 20~30번의 퇴고를 거쳐 글을 완성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글이 기획 출판을 하게 된다면 퇴고한 이후에도 편집자분들과 함께 교열, 교정, 윤문 과정을 거치면서 글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내 글이 부족하거나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은 일단 접어두고 글을 써 내려가자. 초고는 폭풍처럼 써야 한다. 초고가 완성되면, 이제 정말 출판을 고민할 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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