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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Sep 18. 2023

<퍼스트맨>, 공간(Space)

광활한 망망대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광막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라는 티끌 같은 존재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희미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 거대함 속에 묻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 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위대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태양계를 벗어나 유영하는 보이저 1호가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고 저술한 <창백한 푸른 점>의 말이다. 이 말에 따르면 지구는 광막한 우주 속에서 지극히 작은 점, 창백하고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의 중심이기는커녕 극히 작은 태양을 도는 여러 개의 점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우주에서 지구는 바닷가에 있는 하나의 모래알이다.

인간도 그렇다. 넓고 넓은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은 하나의 티끌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토록 사소한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사사로운 것에 벗어나지 못한 채 신경을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광막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그저 하나의 티끌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광활한 망망대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토록 무한히 무거운 삶의 허무를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우리는 세계의 비밀을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손바닥이 쥐고 있는 세계의 비밀을 열 수 있는 힌트이다.

우주(宇宙)를 뜻하는 영단어는 3개가 있다. 우주의 공간을 의미하는 Space, 우주의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는 Cosmos. 3가지의 의미에 따라 3개의 영화를 가져와 삶의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공간(Space)으로서의 영화 <퍼스트맨(Firstman)>, 세계(Universe)로서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Ad Astra)>, 질서(Cosmos)로서의 영화 <해수의 아이>이다.




거대한 이벤트를 가장 내밀하게


데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퍼스트맨>은 1969년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닐 암스트롱에 관한 전기 영화이다.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인간으로 기록되었다. 달을 향한 인류의 꿈을 실현한 그가 가지고 있는 고독에 관해 개인적이고 내밀하게 탐구한 영화이다.

달을 향해 날아가고자 했던 인류의 꿈은 냉전시대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그들은 달을 향해 날아가고자 한다. 하필 왜 달을 향해 날아가고자 했을까. 우선 지구에서 제일 근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군비증강의 또 다른 목표였다. 기술적 우위를 확보해 국제적인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바로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1905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후 50년이 지나고 ‘달’이라는 불가능에 도전한 것이다. ‘왜 달이었는가’로 묻는다면 ‘달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가능을 향해 도전했으며 이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전작 <위플래쉬>, <라라랜드>에서 소리를 탁월하게 다루어낸 감독답게 <퍼스트맨>의 소리의 활용은 놀랍다. 전작과는 분위기가 아예 다른 영화이지만 소리의 활용을 이끌어 내어 감각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동일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주선을 흡사 거대한 철덩어리처럼 표현하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극단적으로 우주선의 내부만을 촬영하여 관객은 실제로 우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우주의 풍경을 비추기보단 긴박한 상황에서 계기판을 지켜보는 우주비행사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데미언 셔젤의 미학적 배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가져왔지만 그는 닐 암스트롱의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달 착륙에 실패한 아폴로 13호를 다룬 영화가 먼저 나왔다는 점은 재미있는 부분이다. 결국 이 영화는 아폴로 11호라는 인류의 가장 큰 이벤트를 가져와 닐 암스트롱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성공스토리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달에 가는 이유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우주비행사로서의 꿈’과 ‘카렌이라는 딸의 죽음’이다. 우주비행사는 외부의 꿈이고 딸의 죽음은 내면의 꿈이다. 내면의 꿈을 향해 다가가는 인간 개인의 화법에 집중하고 있으며 산산조각 난 인물의 마음속 파편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물의 상처, 아픔,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감독의 목표일 것이다. 왜 달을 가야만 하는지 묻는 면접관의 질문에 닐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시각은 달라진다”라고 답한다. 즉 딸과 동료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달이라는 통로를 통해 달리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 인간의 아픔, 상실을 바라본다.

영화는 닐이 비행훈련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비행훈련을 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여 비상착륙을 시도하게 되는데 당시 기지에서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다. 하지만 닐은 어딘지 모른다고 답한다. 이는 영화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즉 이 영화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를 보면 인물들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바로 어떤 꿈에 미치도록 매달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매우 서투르다. 그리고 인물이 이룬 성취보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떠올린다. 개인적인 꿈과 인류 전체의 꿈이 있을 텐데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거대한 꿈조차 성공의 대가를 치르고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고 있다. 이것을 떠올리면 닐 암스트롱이 달을 향해 발을 내딛으면서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말이 반대로 들린다. 치유라는 의미에선 인류 전체의 꿈에 비해 미약한 발걸음이지만 한 인간에게는 굉장히 큰 도약의 순간이다. 즉 달을 향한 여정은 닐의 정신적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공간(Space)의 영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닐이 달에 도착한 순간이다. 닐이 달에 발을 내딛는 순간 헬멧에 달 표면과 자신의 그림자가 비친다. 그 순간 관객은 헬멧에 비친 모습을 보게 된다. 즉 닐이 보는 것을 관객도 동시에 보는 것이다. 닐은 그가 보는 것으로 대변되는 사람이다. 그가 보는 것은 달 표면과 자신의 그림자이다. 달 표면은 인류의 거대한 꿈의 실현이며 자신의 그림자는 그 과정에서 망실한 안타까운 대가이다. 그리고 달에 도착하면서 카메라가 패닝 하면서 탁 트인 광경을 보여준다. 여태까지 답답한 우주선 내부만 보여주다가 보여주는 달의 광경은 그 자체로 절경이면서 연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가 회전하면서 하나의 쇼트를 보여주는 것은 연결의 감각이면서 닐이 카렌, 죽은 동료들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결국 닐에게 우주는 상실한 시간을 연결하고 치유하는 공간(Space)이다. 닐은 두 가지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하나는 인류의 꿈을 실현한 인간이고, 하나는 외로운 인간이다. 닐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온 동료한테 “내가 말동무가 필요해서 뒷마당에 나온 것 같냐”라고 말한다. 즉 닐은 인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에 온 것이 아니다. 단지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고독에서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죽은 딸과의 연결이다. 마지막 달에 있는 ‘고요의 바다’에 딸의 팔찌를 떠나보내며 닐은 진정으로 인간성을 회복한다. 인류의 꿈인 달에 가까워질수록 인간과 멀어지는 고독은 다시 지구에 도착하며 떠나간다. 닐이 지구에 도착하여 아내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맞닿는 장면이 그토록 뭉클한 이유이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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