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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Nov 26. 2023

<괴인>, 연결과 분리

형식마저 괴인 같다.

<괴인>을 봤습니다.



이정홍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영화 <괴인>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감각으로 가득합니다. 조금씩 어긋나거나 뚝뚝 끊기는 것만 같은 편집과 미묘한 리듬감으로 생경한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배우들도 전부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입니다. 마치 우리 주변을 보는 것만 같은 장면 속에서 기이한 인간의 욕망을 정밀하게 구축한 계급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 영화는 느슨한 것 같으면서 팽팽한 장력을 유지하며 흡인력과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영화는 뉴 커런츠 상을 비롯해 넷팩상, KBS독립영화상,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목수로 일하는 '기홍'은 어느 날 자신의 차 지붕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합니다. 지붕 위에서 흘러내린 물을 통해 불청객의 흔적을 발견한 기홍은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정체에 가까워질수록 기홍의 일상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범인을 찾자고 부추기는 집주인 '정환'의 말에 늦은 밤 자신이 작업했던 피아노 학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신원 미상의 인물이 창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날 밤부터 기홍은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영화 <괴인>은 일상의 균열로 만들어 낸 스릴로 인간관계의 상대성을 탐구합니다. 모든 인물이 입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인물들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내뿜습니다. 하나의 선택이 연쇄적인 상호작용으로 사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영화는 그 끝에서 인물에게 집중하며 전혀 다른 지점을 포착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기홍이 사는 '집'이라는 공간은 '분리와 연결'을 통해 인간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상승과 하강의 수직적 거리가 아닌, 연결과 분리를 통한 수평적 거리로 계급을 형상화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전자의 방식으로 계급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면, 영화 <괴인>은 각 인물이 누구와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는지 표현하여 신선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관계의 상대성으로 계급 문제까지 다루며 관객이 예상할 수 없는 부분까지 나아갑니다.



이 영화는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마치 '괴인' 같습니다. 영화와 관객은 시각적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지만, 배경음이 계속 침투하여 청각적 '분리'를 유발합니다.(이 영화는 배경음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유달리 큽니다.) 미스터리하고 스릴러의 기법으로 사건을 연결하다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편집 감각으로 다시 분리합니다. 동물에 특정 의미를 연결하다가, "근데 그걸 따지고 한 건 아니에요"라는 대사가 튀어나옵니다. 이와 같은 독창적인 형식은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느슨한 서사 구조 속에서 관객은 다시 의미를 다채롭게 형성합니다. 이 영화는 인물의 대화를 끝까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중간에서 끊어버리거나 질문만 있고 대답이 없습니다. 애초에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계급의 구조는 사다리가 아니라 평평하지만 살짝 기울어진 운동장 같습니다. 기홍은 정환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정환이 집주인이기 때문에 기홍보다 더욱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홍은 정환이 갖지 못한 '미스터리한 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뛰어내려 차 지붕이 찌그러진 사건은 일상과 결혼생활에서 권태를 느끼고 있는 정환이 갖지 못한 것입니다.



정환이 집의 본관, 기홍이 별관에 살고 있지만 높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환이 2층에 살아서 기홍을 내려다보는 상황이 아니고, 전부 1층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결국 서로의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마지막 상황에 2층에 있는 사람을 보시면 인간의 계급과 심리는 이토록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모두 똑같이 서있지만 교묘하게 어긋나있는 연결과 분리의 괴인들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것이 독특한 리듬감과 정밀한 공간의 구축으로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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