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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Nov 26. 2023

<서울의 봄>, 속도감으로 생생한 역사의 현장

그해 서울의 봄은 짧고 추웠다.

<서울의 봄>을 봤습니다.

 

탄탄한 안정감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완성도가 좋은 영화입니다. 다만 저작권이나 명예 훼손 문제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인물의 이름을 전부 살짝 바꾸었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헷갈립니다. 아무래도 실제 역사가 모티브이고 전부 실존 인물이다 보니 영화의 캐릭터랑 연결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감상하게 되었는데,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모른다면 초반부에 헤매기 쉽습니다. 물론 영화 초반부가 지나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굉장히 스피드하게 진행되고 거침없이 진행되어서 12.12 사태에 잘 모른다면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인물의 개인사, 자잘한 곁가지 이야기들은 전부 발라내고 오로지 그 당시 상황에 집중합니다. 특히 영화의 편집이 굉장히 탄탄합니다. 독창적이거나 인상적인 편집보다는 안정감 있고 정확한 편집 기법으로 속도감이 좋습니다. 긴박한 현장과 고요한 사무실을 대비하는 장면은 완급조절이 좋아 기억에 남습니다.

거의 쉬지 않고 내달리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중반부 작전 장면은 거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방불케 합니다. 그리고 반란군과 진압군이 치열한 전략 싸움을 펼치는데, 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남산의 부장들>, <헌트>, <1987>에 이어서 한국 근현대사를 잘 다룬 영화가 나왔습니다.

 

인물의 대비도 흥미진진합니다. 전두광(전두환)과 이태신(장태완)이 대비되는 형식으로 영화가 짜여있는데,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가면 영화가 더 재미있습니다. 둘 다 무능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지만, 그들을 통솔하고 설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비유하자면 전두광은 감정적으로 뜨거운 불 같고, 이태신은 거대한 고목 같습니다.

각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고 단면적으로 다가와 아쉽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생동감을 더합니다. 황정민 배우는 독사 같은 교활한 연기를, 정우성 배우는 호랑이처럼 호령하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이 영화는 감정적인 이야기가 거의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감정적인 터치까지 해냅니다. 두 배우뿐 아니고 다른 배우들도 전부 한국 영화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호연을 보탭니다. 배우 연기 보는 재미도 확실히 챙긴 영화입니다.

역사의 생생함이 살아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신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지 전달하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신념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과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 인물을 통해 승리와 패배를 역사와 인간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전두광은 역사에서 승리하였지만 인간으로서 패배한 것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종착점에서 전혀 다른 부분을 건드립니다. 영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오히려 평평하게 만들어 아쉽기도 합니다.

 

중간중간마다 지나치게 기능적인 캐릭터가 나와 몰입이 깨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난히 즐길 수 있고 나름 완성도도 챙긴 역사 영화입니다. 역사에 대한 울분이 좀 있다면 갑갑함을 느끼고 영화관을 떠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 역사 바탕이라 결말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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