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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운 Nov 16. 2024

5, 유빙

햇살이 쏟아지는 11월 토요일 신철규 유빙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시는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쉼표를 찍고 끝난다. 차집에 한 연인이 앉아 있다. 이미 이별은 오랜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으나 그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 입김은 찬 것을 녹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것을 식히기도 한다. 눈물은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반면 얼어붙게도 한다. 동일한 말이지만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는 말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였는지 모른다.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는 대목에서 그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도 변한다는 불편한 진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 하얀 모래알,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이런 단어들이 주는 의미는 이들의 이별을 예견하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이 연인들을 결국 헤어졌을까?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말의 단호함이 그들이 앞날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시를 대하면서 많은 생각과 위안을 준다. 이별이라는 게 연인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처음에는 뜨거운 것들이 어느 순간 시들어진다. 오랜 우정을 과시해 사람들도 이해관계와 각자의 다른 생각으로 이별을 하고 만다. 특히 오십 중반이 되니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무엇이 중요한지 여러 가지로 느끼는 부분들이 크게 와닿는다. 젊은 나이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야 인생을 잘 산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거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혼자가 되는 법을 터득하고 익혀야겠다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갖는다. 누군가에게 의지해 애걸복걸할 필요 없이 고독과 외로움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 앞에 선다. 그러니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견뎌야 할 우리네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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