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도저히 더 못 가겠어요."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 나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다. "고 ! 뽈레, 뽈레(Go pole , pole!)" 원정대장 토니가 힘들어하는 대원들을 향해 명령한다. 탄자니어 말로 ‘천천히 천천히 가라’
는 뜻이다. 오늘은 킬리만자로 등반 4일째로 정상을 공격하는 마지막 날이다.
몇 년 전 케냐 수도 나이로비신문에 나의 관심을 끄는 광고가 실렸다. 케냐 주재 탄자니아 대사관에서 킬리만자로 등반원정단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영국, 캐나다, 호주 출신 남성여행자 8명으로 다국적 원정대가 꾸려졌다. 킬리만자로는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휴화산이다. 해발 고도 5895미터로 아프리카 최고봉이자 7 대륙 최고봉이다. 정상은 만년설빙하로 덮여있지만 다른 대륙의 고산들에 비해 춥지 않고 크레바스와 같은 위험도 없어 전문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도 등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등정 성공률이 20-30%라고 하니 국내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올라갈 수 있는 만만한 산은 아니다.
우리의 등반일정은 1970 미터에 위치한 마랑구 게이트를 출발하여 첫날은 2720미터 만다라산장, 둘째 날은 3720미터 호롬보산장, 셋째 날은 4700미터 키보산장까지 점차 고도를 높여가며 산을 오르고, 마지막 날 키보산장을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하는 것으로 일정이 짜였다. 2500미터 지점을 지날 때부터 고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쉬엄쉬엄 걸어도 고산증세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고열과 두통에 더하여 엄습하는 졸음 때문에 비몽사몽 유령처럼 걸었다. 4500미터부터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지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는 크고 작은 돌덩어리와 화산재가 널브러져 있어 마치 화성과 같은 외계행성을 걷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손에 잡힐 듯 앞에 있지만, 전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겨우 겨우 기다시피 키보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시체처럼 널브러지고 말았다.
정상정복을 위해 새벽 1시에 출발하였다. 날씨 변동이 적은 새벽에 등정해야 푸석한 흙이 약간 얼어있어 걷기도 용이하고, 아침 일출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낮 시간에 하산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도 하다. 영하 20도 이하 추위에 견딜 수 있는 방한복과 장비로 중무장하고 정상공격에 나섰다. 80~90도 절벽에 가까운 경사면을 지그재그로 올라야 하는 길은 발이 푹푹 빠지는 화산재 자갈길이었다. 한발짝을 옮기기도 힘겨웠다. 쉬다 가기를 반복했다. 심호흡으로 산소를 최대한 빨아들여야 했다. 5000미터 이상 고지에서는 평지에 비해 산소량이 20-30% 정도 부족하다. 코로 들이키고 입으로 내쉬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급경사 길 한스마이어 동굴 5180미터를 지나 5685미터 ‘길만스포인트’ 까지만 오르면, 정상까지는 좁고 완만한 화산분화구 테두리길이 이어진다. 화산분화구는 지름만 6킬로에 달한다. 그런데 견딜 수 없는 두통과 졸음, 무엇보다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에 구토를 견디기 어려웠다.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온몸을 감쌌다. 결국 길만스포인트 300미터를 남겨 둔 지점에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원정대원 8명 중 나를 포함한 3명이 정상정복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느끼지 못했는데, 하산하여 숙소에 도착하니 오만가지 상념이 차례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만방에 자랑하고 왔는데, 당당하게 정상을 정복하여 칭송과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대한의 건아로써 부끄러웠다. 국가대표선수라도 된 것처럼 국가위상에 누를 끼쳤다는 패배감으로 고통스러웠다.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반드시 정상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하였다.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체력단련과 고도등반에 대비한 산악구보 훈련을 꾸준히 하였다. 체중이 5 킬로그램 빠졌다. 점차 체력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1년 후 킬리만자로 등정에 다시 도전하였다. 이번에는 지난번의 실패를 딛고 그토록 원하던 5895미터 ‘우후르피크’ 빙하정상에 섰다. 그곳에서 환호하며 대한건아의 기개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정상등반 인증서도 받았다. 하산 후 하루 종일 정신없이 잠에 골아떨어졌다. 그동안 짓눌렸던 패배감도 떨쳐버렸다. 인정서와 더불어 정상에서 남긴 사진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