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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Young Nov 12. 2024

(11;미서부 4화)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의 밤

은퇴 부부들의 호기심, 열정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즈필드를 출발해 네바다 산맥 남쪽, 모하비 사막을 지나며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막 안쪽으로 들어서자 드문드문 여우꼬리 선인장과 작은 나무들이 보였다. 멀리 지열 발전소, 풍력 발전기, 석유 펌프잭이 눈에 들어와 이국적인 풍경을 더했다.


 밤새 멀미로 힘들어했던 아내가 아침에 무사히 일어나 안심이 되었다. 멀미를 덜 느끼게 하려고 버스 앞자리를 미리 확보하려 했지만, 이미 자리는 다 차지 됐었다. 다행히 앞자리 여성 두 분께 양해를 구해 자리를 양보받고, 미안해하는 아내를 그 자리에 앉혔다.


 우리 일행 41명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은퇴한 부부들이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이들 중에는 매일 명품 액세서리를 바꿔 착용하는 중년 여성과 그 어머니, 사이가 좋아 보이는 60대 자매, 연인처럼 다정한 중년 커플, 그리고 제주도와 부산에서 온 70대 부부도 있었다. 모두 인생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호기심과 열정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인생은 유한하다. 결국 모두 죽는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항상 건강했던 아내가 어젯밤 아랫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매일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새삼 들었다.


 새벽 네 시쯤 잠에서 깨어 조용히 호텔 로비로 내려가 차를 마시며 밀린 일들을 정리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아내가 내려올 줄 알았지만, 2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자 불길한 마음에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 응답이 없었고, 방 열쇠도 없어서 1층 안내 데스크로 뛰어 내려가 마스터 키를 빌렸다. 그런데 복도 반대편에서 당황한 얼굴로 아내가 다가왔다. 아내도 내가 보이지 않자 걱정돼 호텔 주변을 찾아다녔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건강한 아내의 모습을 보니 안도감과 감사함이 가득 차올랐다.

칼리코 마을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 아몬드, 캐슈너트, 땅콩, 포도밭이 평야를 덮고 있었다. 도중에 들른 칼리코 계곡은 은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약 150년 전 동부에서 온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이곳에서 피땀 흘려 일했지만, 은값 폭락으로 꿈을 접고 떠나야 했다. 당시의 마을은 서부 영화 속 장면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고, 팝, 마을회관, 상점, 소형 증기 열차까지 그 시절의 모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플라밍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1,000개가 넘는 객실이 있는 이 거대한 호텔에는 대형 카지노장이 있고, 호텔 간 이동은 마치 미로 같은 카지노장을 지나야 했다.


카지노장에는 슬롯머신과 룰렛, 포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화려한 조명에 활기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스탠드 바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슬롯머신에서 큰 상금이 터진 듯 사람들이 몰려들고, “Wonderful, congratulations!”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별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나스베이거스 분수쇼

‘눈 덮인’이라는 뜻을 가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의 도시로 인구 200만 명이 넘는다. 1980년대 마피아 조직들이 카지노와 호텔 개발을 시작해 현재는 쇼와 서커스 등 다양한 즐길 거리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도시 전체가 카지노 도박장과 쇼핑센터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으며, 분수쇼에서는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추며 하늘 높이 솟구친다. 대형 스크린으로 천장을 덮은 LED 쇼는 15분간 환상의 공연을 펼쳐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마약과 도난 사건이 잦아 소지품 관리에 주의해야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아 광장은 실제 베네치아 수로를 본떠 만들어 마치 실제 베네치아에 온 듯한 기분을 준다. 인공 하늘은 실제 하늘처럼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내년부터 10년간 매년 2일간 F1 카 레이스가 열린다고 한다. 좁은 도심을 200km로 질주하는 경기로, 엄청난 스릴과 위험이 따르는 대회다. 주최 측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준비하고 있으며, 평균 100만 원에 달하는 티켓은 벌써 1년 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스릴을 즐기려는 이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이 대회는 라스베이거스의 광란의 밤과 잘 어울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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