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는 노점 상인에게는 가격을 깎지 말고 부르는 대로 주라고 말씀하셨다. “길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단순히 돈 몇 푼을 아끼지 말라는 뜻으로만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었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그 가르침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지금은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 쪽문 입구에는 10년 넘게 과일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그는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의 장사는 단순한 생업 그 이상이다. 매일 지나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짠해진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처럼,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가끔은 사소한 물건이라도 사곤 한다.
과일 노점상
그는 항상 리어카에 과일을 가득 싣고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선했던 과일은 점점 상품성을 잃어간다. 팔지 못한 과일을 다시 리어카에 실어 가며 다음 날도 같은 자리에 앉는다. 어떤 날에는 손님을 기다리며 팔 수 없는 과일의 썩은 부분을 잘라내어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보인다. 비 오는 날에는 그가 더 걱정스럽다. 리어카에 담긴 과일이 상하면 팔 수도 없을 테고,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아저씨, 팔지 못한 과일은 어떻게 하세요?" 그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딸과 함께 먹습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다 돈인데 말이죠." 그의 대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매일 과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람에게 팔지 못한 과일조차도 버릴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흔히들 과일 장사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말을 한다. 아파트 가까운 마트에서는 싱싱한 과일을 값싸게 세일하며 판다. 그에 비해 길거리 상인들은 이들과 가격이나 품질로 경쟁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트는 대량 구매와 유통망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길거리 상인은 자신의 힘으로 직접 구입하고 판매하니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를 돕는 따뜻한 단골손님들이 있어 근근이 버티고 있는 듯하다. 단골들은 그가 파는 과일이 조금 비싸더라도, 그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알기에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아준다.
몇 달 전, 수일간 그가 보이지 않아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혹시 몸이 아픈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장사를 그만두신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를 보았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지병 치료를 위해 병원에 급히 입원했었다고 한다. 입원 당시, 준비해 둔 과일은 모두 처분 비용을 내고 버렸다고 했다. 몸도 편치 않았을 텐데, 장사 준비를 한 물건을 처분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다시 리어카를 끌고 나온 그를 보니 안타까웠다. 주위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기초연금을 받으면서도 편히 지내는 경우도 많은데, 그는 왜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는 걸까. 하지만 땀 흘려 일하며 자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을 본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은퇴 후놀고먹는 백수인
내가 부끄럽다.
길거리 상인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시장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에서 길거리 상인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물론 경쟁력을 갖춘 상인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하루가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소비자로서 우리가 그들을 선택하는 작은 행동 하나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오늘도 팔리지 않은 포도를 떨이로 한 묶음 샀다. 조금 시들었지만 맛은 여전히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지만, 앞으로도 이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소비자가 되기를 다짐한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이 그들의 하루를 밝히는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란다.